사흘째 칠레 중부를 휩쓸고 있는 산불로 인한 사망자가 4일(현지시간) 밤 112명으로 늘어났다. 고온건조한 날씨 탓에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는 데다 주민 수백명이 여전히 실종돼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칠레 보건당국은 사상자 급증으로 국가 의료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자 졸업을 앞둔 의대생도 현장에 긴급 투입하기로 했다.
AFP 통신과 BBC 방송에 따르면 마누엘 몬살베 칠레 내무부 차관은 이날 오후 11시쯤 기자회견에서 중부 발파라이소주(州)에서 발생한 산불로 지금까지 최소 112명이 사망했으며 이중 32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날 정오 진행된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 연설에서 사망자수는 64명으로 집계됐는데, 약 12시간 만에 두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전날 헬기를 타고 피해 지역을 시찰한 보리치 대통령은 이날 오전에는 발파라이소 항구도시 비냐델마르 외곽 산간마을을 찾았다. 그는 이곳에서 방송연설을 통해 “현재 64명인 사망자수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며 이번 산불은 “500명이 숨진 2010년 대지진 이후 칠레에서 가장 큰 재난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피해 지역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또한 오는 5일과 6일은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했다.
이후 칠레 산불로 인한 사망자수는 한나절 만에 99명으로 불어났고, 자정을 앞두고는 110명을 돌파했다. 칠레 보건부는 이날 오후 성명을 내고 피해가 집중된 발파라이소 일대에 보건 위기경보를 발령, 불요불급한 수술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임시 현장 의료소를 설치하고 졸업을 앞둔 의대생들을 적극 배치하기로 했다. 전날 오후 9시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내려진 통행 금지령은 계속 유지됐다.
이날 칠레 재해예방대응청(SENAPRED)에 따르면 지난 2일부로 산불 적색경보가 발령된 중부 발파라이소와 오이긴스주에선 사흘간 여의도 면적(290㏊) 90배에 달하는 2만6000㏊가 불에 탔다. 주택부는 3000~6000채의 주택이 이번 화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산했다. 수도 산티아고와 발파라이소를 잇는 68번 국도는 2일부로 폐쇄돼 이날까지도 검은 연기에 휩싸인 상태다.
현재 31대의 소방헬기가 투입된 가운데 1400명의 소방관과 군인 및 자원봉사자 1300명이 화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몬살베 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국적으로 40건의 화재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재해예방대응청은 앞서 이날 오전 34건의 화재를 진화 중이며 43건은 진압에 성공했다고 밝혔는데, 그사이 발화 지역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구 30만의 해양 휴양지인 비냐델마르 외곽 산간 마을의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국은 비냐델마르 일대에서만 이날 산불로 인한 실종자가 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로이터가 비냐델마르 산비탈을 촬영한 영상에는 동네 전체가 까맣게 그을리고 불에 탄 자동차들이 도로를 뒤덮은 모습이 담겼다. 이곳 주민 카스트로 바쿠에스(72)는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화재라기보단 핵폭탄에 가까웠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칠레 정부는 주말간 이어진 35도를 넘나들던 폭염이 오는 6일부터 한풀 꺾이는 만큼 진화 작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CNN 방송에 따르면 현재까지 산불 방화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1명이다. 피의자는 중부 마울레주 도시 탈카의 자택에서 용접을 하던 도중 불을 냈다. 다만 피해가 큰 발파라이소주에선 사람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불길이 시작된 만큼 자연 발화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남반구 폭염이 급증한 데다 지난해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는 엘니뇨가 고온건조한 환경을 조성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