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은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을 위해 최후의 보루 역할을 자처해 왔지만, 이제 그 역할이 중국에 넘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이 빚더미에 올라앉은 국가들에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새로운 강자로 등장했다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버지니아주 윌리엄스앤드메리대학 소속 연구기관인 에이드데이터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터키·스리랑카·아르헨티나에 그 어떤 나라나 기관보다도 많은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전략적 요충지 등 지정학적 중요성이 있거나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을 주로 지원해 왔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인프라 또는 기타 정부 프로젝트의 비용을 대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빌렸다.
중국의 구제금융 규모는 아직 IMF에 미치지 못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2400억달러(약 312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원하면서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지난 2010년까지만 해도 중국은 타국에 구제금융을 한 푼도 제공하지 않았지만, 2021년 들어서는 한해 405억달러 수준으로 늘었다. 같은 해 IMF의 구제금융 대출액은 686억달러였다.
여러 면에서 중국은 중저소득 국가들의 구제금융 측면에서 미국을 대체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실시한 마지막 대규모 구제금융은 2002년 우루과이에 제공한 15억달러의 신용 대출이었다.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이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마힌다 라자팍사 당시 스리랑카 총리와 회담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
중국이 이렇게 최후의 대출기관으로 부상하는 건 많은 나라들이 경기 둔화와 금리 상승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가운데 경제 대국으로서 중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NYT는 해석했다.
이런 행보는 지정학적, 외교적 관계를 강화하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표적인 프로젝트 ‘일대일로’의 산물이기도 하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추진하며 151개 중저소득국에 무려 9000억달러를 빌려줬다. 국영 금융 기관을 통해서다.
다만 중국은 변동 금리 방식으로 상당히 높은 이자율에 구제금융을 제공한다. 중국의 긴급 구제금융 금리 수준은 약 5%로, IMF 대출이 금리가 2%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훨씬 높다.
아울러 중국은 최근 대부분의 구제금융을 자국 통화인 위안화로 제공하고 있다. 2021년 중국이 제공한 구제금융의 90% 이상은 위안화였다.
미국은 중국이 개도국들에 중국 기술자와 중국 노동자, 중국 장비를 사용해 인프라를 건설하도록 함으로써 이미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나라들을 더 큰 부채에 빠뜨리는 ‘함정 외교’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친강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3월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에서 “중국은 다른 어떤 G20 국가보다 많은 상환 연기를 해왔다”며 대출의 긍정적인 기능을 강조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관련 보도에 대해 “중국은 각국에 차관을 받도록 강요한 적이 없으며, 그런 합의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거나 정치적으로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