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러시아 무기 커넥션’의 증거를 공개하며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강도 높은 압박을 가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그간 양자 간 무기 거래 주장이 사실과 무관한 ‘중상모략’이라고 주장해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0일(현지시간)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돕는 러시아 민간 용병회사인 ‘와그너 그룹’에 무기를 전달하는 정황을 포착한 위성사진을 전격 공개했다.
미국의 이번 행보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간 미국은 북한이나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가하면서도 ‘실물’에 해당하는 증거를 상세히 공개하진 않았었다. 때문에 이날 백악관이 브리핑까지 하며 불법 무기 거래의 ‘물증’을 공개한 것은 복합적인 외교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먼저 백악관이 공개한 북러 간 무기 거래 날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브리핑에 나선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무기’를 싣기 위해 러시아에서 출발한 열차가 지난해 11월18일 북한으로 들어간 뒤 다음날인 19일에 나왔다고 밝혔다.
11월18일은 북한이 지난해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라는 구호와 함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화성포-17형)을 발사한 날과 같다. 미국은 북한이 ICBM 발사로 전 세계의 주목과 ‘정보력’을 평양에 집중시킨 사이에 러시아와 무기 거래를 하면서 일종의 ‘기만전술’을 펼쳤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9월22일, 11월8일, 12월23일에 담화 등을 통해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 사실을 부인하는 입장을 냈다. 이중 11월, 12월에 나온 북한의 입장은 이미 러시아와 상당 수준으로 합의가 도출되고 거래가 이뤄진 뒤에 나온 것으로, 미국의 입장에서는 ‘물증’ 공개를 통해 북한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도 해석된다.
또 북한이 지난해 ICBM 개발 과정에서 수시로 기만전술을 구사한 바 있어 이에 대한 강력한 경고 차원도 있어 보인다. 특히 북한이 최근 정찰위성 개발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정보력을 강화하는 행보를 이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의 정보력이 더 우수하며, 다 들여다보고 있다”라는 대북 메시지를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국제사회 차원에서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가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커비 조정관은 “와그너 그룹은 지속적으로 북한의 무기 체계를 전달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유엔 안보리 차원의 조치를 모색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와 함께 안보리에서 이런 위반 사항을 계속 제기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 차원의 제재는 지속적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제재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고 있으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 역시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독자제재만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미국은 명확한 물증 제시를 통해 앞으로 진행된 유엔 안보리 차원의 논의에서 북중을 옹호하는 입장을 반박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 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서영 기자 |
한편으론 유엔 차원의 제재까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각국의 독자제재 참여도와 명분을 높여 독자제재의 ‘연계를 통한 제재 및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것도 효과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이 먹힐 경우 중국도 작지 않은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번 사안이 미국의 대중(對中)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단체·개인 제재) 발동에 ‘명분’을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이날 와그너 그룹을 ‘국제범죄조직’으로 지정했으며, 내주 와그너 그룹과 관련된 다수 대륙에 있는 관련 네트워크를 대상으로 추가 제재를 부과할 예정임을 밝히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당장은 안보리 차원의 공동대응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채택되려면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는 동시에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가운데 어느 1곳도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되는 ‘현실적 문제’ 때문이다.
북한가 러시아도 일단 기존의 입장을 견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미국이 위성사진을 통해 ‘열차’만 공개하고 무기 자체를 공개하진 못한 것을 파고들며 자신들의 혐의를 부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이번 사진 공개는 궁극적으로 ‘러시아를 지원하지 말라’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담긴 것”이라며 “그러나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북러를 겨누는 안보리 차원의 제재 발동은 어려울 것이며 미국의 독자제재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