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발언으로 우리나라의 ‘자체 핵무장론’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미국 정부가 “한국은 ‘확장억제’ 우산 안에 있다”며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이와 관련 미 정부가 핵자산 운용의 공동기획·실행 등 측면에서 우리나라에 과거보다 높은 차원의 ‘확장억제’ 제공하기 위한 논의에 한층 더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2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우리나라의 핵무장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미국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다”며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커비 조정관은 “한국도 스스로 ‘핵무기를 추구하는 게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한미가 공동으로 추구할 건 확장억제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도 “미국의 정책은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초점을 계속 맞추고 있다”면서 “한국이 확장억제 우산 안에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확장억제 능력 강화’는 그동안에도 미 당국자들이 수시로 사용하던 표현이다. 그러나 이날 백악관과 국방부의 관련 반응은 한국 내 여론을 상당히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지난 11일 외교부·국방부로부터 연두 업무보고를 받은 뒤 우리나라에선 ‘핵엔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거세졌기 때문이다.
우리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당시 업무보고를 마무리하면서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경우’란 전제 아래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에 대해 ‘당장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취지는 아니다’고 설명하고 있는 상황. 신범철 국방부 차관은 12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발언은)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행을 준비하라’는 지시 속에 나온 것”이라며 “‘자체 핵무장론’이나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확장억제의 실효성이 떨어질 경우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란 평가도 여전하다. ‘확장억제’란 미국이 적대국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핵능력과 재래식전력, 미사일 방어능력 등의 억제력을 미 본토 방위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제공한다는 개념을 말한다.
이런 가운데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한국의 핵무장을 반대할 것’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종섭 국방부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작년 11월3일(현지시간)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 앞서 미국 국방부 청사(펜타곤) 입구에서 열린 의장행사에 참석했다. (국방부 제공) 2022.11.4/뉴스1 |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핵무장’은 미국이 수많은 동맹국에게 보장하고 있는 확장억제 신뢰도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미국은 1968년 이후 비확산 체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동맹국의 핵무장은 비확산 체제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정부가 앞으로 우리나라에 ‘기존보다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확장억제’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단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재 한미 군사당국은 실효적 대북 확장억제를 위해 미 핵전력을 공동기획·연습 개념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 방안은 작년 11월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당시 양국 국방장관이 채택했고, 윤 대통령이 이달 초 언론 인터뷰에서 재차 확인한 내용이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미 핵전력 운용에 관한 한미 간 공동기획·연습은 미국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모든 과정에서 우리 발언권을 제도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한국형 핵공유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미는 또 작년 SCM에서 미 전략자산을 ‘상시 배치’에 준하는 수준으로 한반도에 전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미 전략폭격기나 원자력 추진 잠수함 등이 필요시 즉각 한반도에 출격한다면 전술핵 재배치와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한미는 이를 논의하기 위해 △내달 중 북한의 핵사용 시나리오를 상정한 한미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TTX)을 실시하고, △5월엔 최초로 ‘군 대(對) 군’ 형식의 한미 간 대북억제·대응연습(TTX)을 진행한다. 한미는 또 △연내 ‘한미 맞춤형 억제전략'(TDS)을 개정할 예정이다.
TDS란 북한 지도부의 특성과 핵·대량살상무기(WMD) 위협 등을 고려해 한반도 상황에 맞게 최적화한 한미 공동의 대북 억제전략을 뜻한다.
군 관계자는 “한미 양국이 이전에 없었던 수준의 확장억제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구체적 협의엔 시간이 걸리겠지만 확장억제 공약의 실행력을 높인다는 데는 한미 간 이견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