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초인종을 잘못 눌렀다는 이유로 총을 쏜 80대 백인 남성이 무혐의로 풀려난지 사흘 만에 결국 중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AFP 통신에 따르면 17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검찰은 앤드류 레스터(85)를 1급폭행과 무장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보석금은 20만달러(약 2억6000만원)로 책정됐다.
피의자 레스터는 지난 13일 밤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자택 초인종을 누른 흑인 소년 랠프 얄(16)의 머리에 두 발의 총상을 입힌 혐의를 받는다. 당시 얄은 근처 친구집에서 쌍둥이 형제를 데리러 오려다 중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자정 레스터는 현지 경찰에 체포됐지만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음 날 오전 1시24분쯤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지난 주말 가해자의 집 앞을 행진하며 규탄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랠프를 위한 정의를”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초인종을 울리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기부금 사이트인 ‘고펀드미’에는 얄의 치료비로 이날 오후까지 230만달러(약 30억원)가 모금됐다.
얄의 변호인은 얄에 대해 “뛰어난 학생이자 재능 있는 음악가”라며 검찰에 가해자를 10대 살인 미수 혐의로 체포하고 기소하라고 요구했다. 얄의 이모인 페이스 스푼무어는 그의 조카가 화학공학과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매진하던 재능있는 학생이었다고 전했다.
스테이시 그레이브스 캔자스시티 경찰은 전날 밤 기자회견에서 당시 상황을 인종차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 사건에 인종적 요소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며 증오범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인종문제로 비화할 조짐이 보이자 정치권도 즉각 대응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얄에게 전화를 걸어 쾌유를 빌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어떤 아이도 초인종을 잘못 눌렀다는 이유로 총에 맞을까 봐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미주리주에서는 미국의 정당방위 법에 해당하는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Stand Your Ground Law)’이 인정된다. 이 법에 따르면 집주인은 침입자로 의심되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은 이 법이 사망 및 심각한 신체 부상, 중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캔자스시티에서 활동하는 존 피케르노 변호사도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주법상 사유지에 불법 침입한 경우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도 “초인종을 잘못 누르는 정도는 불법 침입으로 보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한편 지난 15일에도 미국 뉴욕주에서 비슷한 이유로 총격이 벌어져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뉴욕주 경찰은 이날 밤 뉴욕 히브론에서 친구집에 방문하려던 백인 여성 케일린 길리스(20)가 이웃집 주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고 밝혔다.
당시 길리스는 다른 이웃의 집에 들어가려다 잘못된 주소임을 알고 나오던 도중 현관 밖으로 나온 집주인에 의해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다음 날 계획적 살인을 벌인 혐의로 65세 집주인을 체포해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