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의 중앙은행들이 오락가락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전환(피벗)하려는 신흥국들의 계획이 금리 인상을 다시 가속화하려는 연준 때문에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오락가락’ 연준 때문에 이머징 피벗 난관
로이터통신은 8일(현지시간) 분석 기사를 통해 ‘피벗을 계획한 이머징 마켓의 중앙은행들이 연준발 고통(Fedache)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연준을 뜻하는 Fed와 고통을 의미하는 ache를 합친 Fedache라는 조어로 신흥국이 처한 상황을 표현했다.
신흥국들은 연준에 앞서 금리를 인상해 선제적 방어에 성공했고 금리 인하와 관련해서도 선두주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문제는 신흥국들의 금리 인하 타이밍이 연준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준이 기준금리 고점을 6%까지 끌어올릴 위협을 가하며 이코노미스트들은 연준에 앞서 선제적 긴축에 나섰던 신흥국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예의주시한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JP모간이 집계한 금융시장 예상에 따르면 헝가리와 칠레는 이르면 이달 대규모 완화(금리인하) 사이클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헝가리와 칠레는 지난 2년 넘는 기간 동안 기준금리를 각각 12%포인트(p), 11%p씩 끌어 올렸다.
폴란드·페루는 6월, 체코·콜롬비아·브라질은 3분기, 인도·멕시코·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올해 말 혹은 내년 초 금리 인하를 시작할 수 있다로 로이터는 예상했다.
피쳇의 귀도 차모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머징의 완화 파도가 밀려 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장이 예상했던 것만큼 빠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준보다 훨씬 앞서기는 매우 힘들다”고 덧붙였다.
◇”현지 통화채권, 낙폭 클수록 강력한 반등”
금리 인하는 신흥 경제가 악화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10년 전 연준이 전대 미문의 양적완화를 회수한다는 갑작스러운 신호로 촉발했던 ‘긴축 발작’ 이후 신흥국 현지통화 표시의 채권을 정기적으로 매입했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들에게 신흥국의 금리인하는 안도감을 줄 수 있다.
신흥국에서 금리 인하는 현지통화 채권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경향이 있는데 채권 발행주체가 제시한 금리가 떨어지기 전에 채권 매수가 몰리기 때문이라고 글로벌자산운용사 미라보의 다니엘 모레노 이머지마켓 채권본부장은 설명했다.
그동안 신흥국들은 금리를 올렸고 현지통화 채권은 곤두박질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긴축발작이 발생하고 이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이 발생했던 2013년과 2015년 사이 신흥국 현지통화 채권의 가격은 거의 27% 떨어졌다.
러시아가 또 다시 우크라이나를 공격해 전쟁을 벌이고 세계가 코로나19에서 벗어나 회복했던 지난해에도 글로벌 인플레이션, 금리, 달러 강세로 신흥국 채권은 거의 12% 하락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애널리스트들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신흥국에서 발생한 금리인상은 167회에 달한다. 신흥국 금융 시장이 열리는 1.5거래일마다 1회꼴로 금리가 올랐다는 얘기다.
미라보의 모레노 본부장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떨어진 시장에서 가장 강하게 반등한다”며 헝가리 현지통화 표시 채권은 약정금리가 최고 15%에 달하는데 지난해 가격은 27.5% 추락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헝가리 통화 채권의 가격은 거의 8% 올랐다. 금융시장은 앞으로 12개월 동안 헝가리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무려 6%p 낮출 것이라는 전망을 가격에 반영한다. 같은 기간 브라질은 1.25%p, 칠레는 3.5%p, 폴란드와 체코는 각각 1%p씩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라고 시장은 예상한다.
◇신흥국 피벗 후퇴는 없지만 신중론
연준이 금리를 6%까지 끌어올릴 가능성도 보이지만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현지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떨어지고 있어 ‘피벗’ 계획을 고수할 것이라고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가브리엘 스턴 신흥국 리서치 본부장은 예상했다.
스턴 본부장의 분석에 따르면 1980년 이후 연준의 마지막 7개의 피벗에 12개월 앞서 인하 사이클을 개시한 신흥국은 전체의 1/3에 달했다. 또 지난 20년 동안 주요 신흥국 중에서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금리 인하가 후퇴된 경우는 없었다.
스턴 본부장은 “중앙은행들이 해야 할지를 진짜 결정하는 것은 국내 상황”이라며 “연준이 아직 피벗하지 않았다고 망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국의 피벗이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모두가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모건스탠리투자관리의 패트릭 캠벨은 신흥국 현지채권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의 금리 리스크 프리미엄을 제공하며 “극도로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미국의 고수익 채권도 9% 이자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또 연준이 금리를 6%까지 끌어올리면 중국, 인도네시아, 칠레, 필리핀의 현지통화 가치는 4~5% 떨어질 수 있다고 UBS애널리스트들은 신중론을 제기했다. 금융시장이 연준발 긴축 강화로 침체에 대해 다시 겁 먹기 시작하면 신흥국들의 통화가치는 추가 하락할 수도 있다고 UBS는 경고했다.
UBS의 마닉 나레인 신흥시장 다자산 전략 본부장은 “연준은 내년에도 금리 인하가 없을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는데 현재 헝가리, 칠레, 멕시코는 꽤 상당한 완화 사이클을 아직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며 “연준이 6%까지 갈 것인지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