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 논의에 돌입하고 정년 연장에 대해서도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경제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만들고 정년 연장은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재계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신규 취득 자기주식 처분 공정화로, 정년 연장은 퇴직 후 재고용이라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여론전에 돌입했다.
대한상의 “기업 10곳 중 6곳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반대'”
12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국정감사가 끝나자 3차 상법 개정에 대한 논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최근 “자사주 소각 관련 3차 상법 개정과 관련해 당내 코스피5000특별위원회에서 상당히 논의가 많이 진척된 상태”라며 “국감이 끝나면 추진하겠다는 일정”이라고 밝혔다.
여권에선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인 자사주에 대한 소각 원칙이 정해지지 않아 자사주 취득은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소각 의무 원칙을 정해 기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여권에서 발의된 상법 개정안 가운데 김현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에선 신규 자사주는 취득 즉시, 기존 자사주는 6개월 이내 소각을, 민병덕 의원안에선 1년 이내에 소각하되 자사주가 발행주식의 3% 미만인 경우 2년 이내 소각하도록 했다.
재계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다양한 경영 전략 활용이 어려워지고 경영권 방어 수단도 상실된다고 지적한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기업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고 자본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상의가 공개한 자사주를 10% 이상 보유한 104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62.5%가 소각 의무화에 반대했다. ‘소각 의무화 도입에 찬성한다’는 14.7%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경영 전략에 따른 자사주 활용이 불가하고 경영권 방어도 약화한다고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특히 자사주 취득 요인이 감소함에 따라 주가 부양에도 악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응답 기업의 80% 이상이 자사주 취득을 안 하거나 축소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재계에선 해외와 비교해도 자사주 소각 의무화 조치는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규정이 있는 독일에서도 자사주 보유 비율이 자본금의 10%를 초과하면 3년 이내 처분을 의무화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자사주 보유 비중 역시 주요 선진국 대비 낮다는 설명이다.
‘정년 연장’ 반대 사활…”청년 취업난 가중·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
재계는 여권의 정년 연장 추진 역시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정치권을 향해 ’65세 법정 정년 연장’의 연내 입법을 촉구한 상태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민주노총과의 간담회에서 단계적인 정년 연장은 정부의 국정 과제라고 화답했다.
다만 당장 연내 입법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노사 이견이 상당히 큰 데다 청년 고용 등에 미칠 파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권은 단계적인 정년 연장을 추진한다는 입장은 분명하다. 재계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중심으로 우려를 전달하면서 설득 작업에 나서고 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김지형 신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비용 증가, 신규 고용 위축 등의 우려를 전달했다. 경총은 65세로의 법정 정년 연장은 청년 취업난을 가중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정년 연장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에만 혜택이 집중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경제계는 정년 연장 대신 기존 근로관계가 종료한 후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는 재고용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동시에 임금체계 개편 논의도 병행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연공형 임금체계로는 고용 부담이 크기에 직무 가치 및 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로 개편해야 고령자에 대한 고용 방식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재계가 여권이 추진 중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법정 정년 연장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하고 있지만 입법 과정에서 얼마나 수용될지는 미지수다.
여권에선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코스피 5000시대’를 실현할 수 있는 동력이라고 판단한다. 코스피 지수가 4000을 돌파하자 여권에선 추가 상승을 위해 연말까지 자사주 제도와 세제 개편 등의 논의에 집중하겠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정년 연장 역시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현 정권의 강력한 지지층인 노동계 역시 여권에 대한 정년 연장 압박을 연일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재계는 노동 현안에 있어서 노조에 연전연패를 거듭해 왔다. 재계는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등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입법이 완료된 바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정년 연장 등에 대한 경제계의 우려를 계속해서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