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원 환율이 1470원대까지 치솟으며 고환율발(發) 물가 압력이 현실화하고 있다. 생산자·수입물가가 동반 상승하며 소비자물가까지 자극하는 ‘고환율-고물가’ 고리가 단기간에 끊어지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들어 달러·원 환율은 글로벌 달러 강세, 지정학적 리스크, 내국인의 해외투자에 따른 자금 유출 등으로 1400원대를 장기간 유지하다가, 지난 21일 7개월 만에 최고치인 1475.6원으로 마감했다. 시장에서는 1500원 돌파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원화의 실질가치도 급락했다.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89.09로, 금융위기 이후 1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내국인의 해외 주식 투자 급증 등이 원화 약세를 심화시키면서,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에 추가적인 상승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고환율 영향은 기초 물가 지표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0.82(2020년=100)로 전월 대비 0.2% 상승하며 두 달 연속 올랐다.
생산자물가 상승의 배경은 고환율로 수입 원재료 비용이 늘어난 데 있다. 환율이 오르면 동일한 원자재를 들여오더라도 기업의 원화 지출이 커지고, 이는 제조·서비스업 전반의 생산 비용을 높여 공산품·가공식품·중간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수입물가도 넉 달째 상승했다. 10월 수입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1.9% 오른 138.17로 올해 1월 이후 가장 큰 폭을 기록했다. 수입 대부분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환율이 오르면 국제 가격 변동이 없더라도 원화 기준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에너지·광물·곡물 등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환율의 영향은 더 즉각적으로 반영된다.
10월 소비자물가도 전년 대비 2.4% 상승하며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큰 폭을 보였다. 석유류(4.8%), 축산물(5.3%), 가공식품(3.5%) 등 수입 의존 품목들이 상승세를 주도하며 고환율의 여파가 소비 단계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달러·원 환율이 1400원대 후반 수준까지 오른 상태가 계속되고 있어, 단기적으로 환율이 내려갈 뚜렷한 요인이 없다고 보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관세 협상 등 일부 불확실성이 정리됐지만 외국인 자금 유출이 이어질 경우 원화 약세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며 “고환율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이 이미 누적돼 있어,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도 원화 기준 가격은 쉽게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 상황에서 환율은 1400원 아래로 내려가기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 1500원 이상 오른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 상승은 수입품 가격을 끌어올리고, 이는 운송·유통비 상승을 거쳐 소비재 가격 전반에 영향을 준다”며 “정부는 소비 진작 정책을 자제하고 한국은행은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달러·원 환율 급등세에 대응해 정부와 국민연금은 다음 주 비공개 회의를 열고 외환시장 안정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로 인한 달러 수요가 환율 상승을 자극하는 구조적 요인을 완화하는 방안이 주요 의제로 거론된다. 다만 국민연금은 ‘수익성 우선’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정부와 일부 입장 차가 존재한다.
정부는 고환율의 물가 파급효과를 계속해 예의주시하며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고환율이 물가의 상방 요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