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 이후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남북 관계를 ‘두 국가’로 인정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정부 고위급 인사들도 입장 차이를 보이는 조짐이 감지돼 주목된다.
우선 대북 주무 부처 수장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평화적 두 국가’ 관계를 줄곧 주장하고 있다. 정 장관은 24일 개최된 ‘북한의 2 국가론과 남북기본협정 추진 방향’ 세미나에서 “지금은 남북 관계에 대한 실용적 접근, 새로운 접근이 필요할 때”라면서 “적대적 두 국가론을 평화적 두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남북은) 국제법적으로 국제 사회에서 국제 정치적으로 두 국가였고, 지금도 두 국가”라면서 1991년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중 2단계는 ‘국가연합 단계’로 두 국가 상황을 명시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정 장관은 여러 자리에서 북한이 규정한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적대성 해소’에 방점을 두고 평화적 두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는데, 이와 맥을 같이하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같은 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두 국가론을 우리 정부 차원에선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위 실장은 24일 미국 뉴욕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남북 관계는 통일이 될 때까지의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 “이 원칙들은 과거 남북 간의 합의나 2018년 채택된 북미 싱가포르 성명 등에서도 강조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위 실장과 정 장관의 배치되는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19 군사합의’ 복원 속도를 두고도 인식차가 발생한 바 있다.
정 장관은 지난 19일 경기도 파주에서 개최된 9·19 평양 공동선언 및 남북 군사합의 7주년 기념식에서 “적어도 올해 안에는 9·19 군사합의가 선제적으로 복원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날 위 실장은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꼭 9·19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남북 간의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노력을 안보에 저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작하겠다”라면서 “북한의 반응을 보면서 정부 안에서 조율해서 진행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 초기 출범부터 정치권에선 ‘자주파’와 ‘동맹파’ 간 이견이 불거졌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국가정보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자주파로, 외교부 출신의 ‘미국통’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동맹파로 분류됐다.
그 이후로도 줄곧 대북 정책을 펼칠 때 정책의 수위나 속도 조절, 전략 및 방법론을 둘러싸고 팽팽한 기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정도 나왔다.
다만 일각에선 자주파와 동맹파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갇힐 필요는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는 정부 차원의 균형 잡힌 판단을 위해 자주와 동맹을 ‘대립 항’이 아니라 ‘병행해야 할 정책 축’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다.
즉, 대북 및 외교 정책에서 전술과 우선순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이를 진영 갈등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는 “남북 관계 및 대북 정책은 불가피하게 이념적 논쟁을 동반할 수 있어 ‘남남갈등’과 같은 사회적 분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메시지 관리와 정책 조율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