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규제 완화에 반등하는 듯 했던 집값이 다시 내려가고 있다. 서울 내 아파트 곳곳에선 ‘심리적 저지선’으로 통했던 최저선의 가격대도 무너지는 모습이다.
1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 목동신시가지14단지 전용면적 55㎡(12층)는 지난 4일 9억2900만원에 거래되며 심리적 저항선이라는 10억원이 붕괴했다. 해당 평형이 10억원 밑으로 거래된 건 지난 2020년6월 이후 처음이다. 특히 불과 2개월 전 1층이 10억3000만원에 거래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대가 크게 낮아졌다.
이달 2일에는 강동구 상일동 고덕자이 전용면적 84㎡(25층)가 9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입주 첫해인 2021년 7월 16억8000만원으로 최고가를 찍었는데, 1년 반 만에 43.6%가 하락했다. 하락기에도 11억~12억원 정도에 거래가 되며 가격 방어를 해왔으나 결국 10억원 선이 무너졌다.
강동구에선 대장주로 통하는 고덕그라시움 전용 84㎡(4층)의 경우 지난 4일 13억8500만원에 거래됐다. 최고가에 비하면 5억원 넘게 떨어진 금액이다.
강남권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달 30일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면적 84.8㎡(4층)가 18억7000만원에 거래됐다. 저층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드문 일이라는 평가다. 잠실엘스가 19억원 밑에 거래된 건 지난 2020년6월 이후 2년7개월 만이다.
잠실동 소재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지금 매물이 거의 19억원 대인데, 이 밑으로는 쉽게 내리진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저층이기는 해도 18억원 대의 가격에 거래가 됐다는 것은 이례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 이후 회복세를 보이는 듯 했던 시장은 다시 침체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월 1주(26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은 -0.31%로 지난주 -0.25%에 비해 낙폭이 커졌다. 그간의 반등은 크게 하락하다가 잠깐 회복하는 데드캣 바운스(Dead cat bounce)라는 평가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규제 완화에 따른 잠깐의 반등일 뿐이었다”라며 “시장이 회복될 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짐에 따라 집값 하락에 속도가 붙을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고금리 등으로 인해 집값이 내릴 요인이 더 많은 상황이다”라며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진 만큼 집값은 더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도 “그간 버텨오던 최저선이 무너지게 되면 집주인들이 조금 더 경쟁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며 “집값이 더 빠르게 많이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셋값이 가격의 붕괴를 부추기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송승현 대표는 “전셋값이 빠지다 보니 과거와는 달리 집에 들어가야 하는 금액이 커졌다”며 “과거에는 전세끼면 5억원 들 것이 지금은 8억~10억원이 들어간다는 의미다. 결국 집값이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