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경제 대국 미국이 ’40조 달러 부채’라는 전례 없는 수렁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미국의 재정 건전성은 환율·금리·수출 경쟁력과 직결되는 핵심 기초 체력이다. 미국 정부의 재정 여력이 고갈된다는 것은 경기침체 국면에서 대규모 부양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며, 그 충격파는 글로벌 경기 전반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피터슨 재단(Peterson Foundation) 자료를 인용해 미국 국가부채가 39조 달러(약 5경80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오는 10월이면 40조 달러(약 5경9500조 원) 벽마저 허물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38조 달러(약 5경6500조 원)에 이른 지 불과 5개월 만에 1조 달러(약 1488조 원)가 다시 쌓인 가파른 증가세다.
5개월에 1조 달러…이자 비용이 국방비를 추월했다
미 의회예산처(CBO)의 장기 전망은 한층 어둡다. CBO는 현 궤도가 유지될 경우 10년 후부터는 부채 이자 상환에만 연간 2조 달러(약 2976조 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미 국방비 지출 규모를 앞지른 이자 비용은 미국 연방 예산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불어나는 항목으로 자리 잡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3월 31일 대선 캠페인에서 “취임 후 8년 안에 국가부채를 전액 상환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 이후 현재까지 미국 부채는 오히려 두 배 가까이 팽창했다. 2024년 대선 과정에서도 트럼프는 관세 수입을 통해 국가부채를 갚겠다고 다시 공언했다. 고령층 표심을 의식해 복지 삭감을 외면하는 공화·민주 양당의 뿌리 깊은 포퓰리즘이 부채 확대의 구조적 배경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호사스러운 공산주의”…정치권이 손 못 대는 75%
싱크탱크 프라임 무버 인스티튜트(Prime Mover Institute)의 러스 그린(Russ Greene) 연구원은 지금의 미국 재정 구조를 “베이비붐 세대의 호사스러운 공산주의(Total Boomer Luxury Communism)”라고 명명했다.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복지 혜택을 떠받치기 위해 미래 세대의 부를 선(先)소비하고 있다는 통렬한 비판이다.
미국 연방 지출의 약 75%는 의회의 연간 심의를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집행되는 예산이다. 사회보장연금(Social Security)·메디케어(고령자 의료보험)·부채 이자 상환이 이 범주에 속한다. 정치권이 해마다 예산 공방을 벌이는 재량 지출은 전체의 15% 수준에 그친다.
그린 연구원은 “공화·민주 양당이 서로 극단으로 치닫는다고들 하지만, 예산 구조를 들여다보면 두 정당 모두 고령층 표를 잡으려는 복지 포퓰리즘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부 고령 가구가 연간 11만 7000달러(약 1억 7400만 원)에 달하는 사회보장 급여를 받으면서도 골프 비용이나 스키 여행 경비까지 지원받는 사례를 거론하며, 이것이 납세 근로 세대에서 은퇴 세대로 부가 역류하는 ‘역진적 이전 구조’임을 강조했다.
GDP 대비 부채 100% 시대…다음 위기엔 재정 실탄이 없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역사적 경계선을 잇달아 돌파하고 있다는 사실도 심각한 경고음을 울린다.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연구소(AEI)의 케빈 코사르(Kevin R. Kosar) 연구원에 따르면, 1946년 이후 재정적자가 GDP 대비 역사적 평균인 3.8%를 초과한 사례는 단 여덟 차례였다. 그런데 그중 세 번이 2023년부터 2025년 사이에 집중됐다. 3년 연속 비상 임계치를 넘어선 것은 현대 미국 재정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연방재정책임위원회(CRFB) 자료를 보면, 미국이 과거 주요 경기침체에 진입할 당시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각각 35%, 80% 수준이었다. 현재는 이 비율이 이미 100%를 넘어선 상태다. 재정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정부가 위기 국면에서 꺼낼 수 있는 재정 카드가 사실상 소진됐다”고 해석한다.
전문가들이 더 우려하는 대목은 부채 팽창의 ‘성격’이다. 지금의 차입은 도로·항만·교육처럼 미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생산적 투자가 아니라, 현 세대의 소비를 메우기 위한 ‘탕진형 차입’에 가깝다는 진단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재정 전문가들은 “세대 간 형평성을 전제로 한 복지 구조 개혁 없이는 부채 증가세를 되돌리기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개혁 타이밍을 놓칠수록 미래 세대에게 전가되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고 경고한다.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를 지닌 한국 입장에서도 이 문제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미국의 재정 건전성 악화는 달러화 가치와 미국 장기 국채 금리를 흔들고, 이 파장은 한국의 환율·외국인 자금 흐름·수출 채산성으로 직접 전이된다. 워싱턴이 재정 위기의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서울 역시 그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