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24일)을 앞둔 20일(현지시간) 철통같은 보안 속에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발렌타인 데이 주간 주말이었던 지난 18일 오후 7시쯤 워싱턴DC에서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백악관으로 복귀하기 전 저녁 식사를 한 모습이 포착된 후 약 36시간만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이후 우크라이나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파랑과 노랑 줄무늬 넥타이를 착용한 바이든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복 전쟁은 실패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어 “(러시아의 침공) 1년 후, 키이우는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도, 민주주의도 존재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했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5억 달러(약 6485억원) 규모의 새로운 군사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전격적인 방문은 러시아의 침공 1주년이 다가오면서 전 세계에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존재하고,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함께 서 있는 것을 단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은 물론 푸틴 대통령에 맞서 서방을 하나로 묶기 위한 자신의 헌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게 백악관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직 미국 대통령이 활발한 전쟁지역(war zone), 특히 미군이 주둔하지 않고 있는 전쟁 지역을 방문했다는 점이다. 백악관도 “역사적이고,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조지 W. 부시 및 버락 오바마,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재임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을 극비리에 방문했지만, 이들 지역은 모두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위해 백악관은 지난 수개월 간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방부, 비밀경호국, 정보기관 등에서 소수의 고위 참모들만 참여하는 철통 같은 보안 속에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계획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각 단계와 잠재적인 비상사태에 대해 충분히 보고를 받았고, 지난 17일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팀의 핵심 인사들과 전화통화를 가진 뒤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3.2.20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
이후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일정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백악관은 전날(19일) 오후 7시에 보낸 일정 보도 참고자료에 이날 오후 7시에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폴란드로 출국한다고 공지할 정도로 보안을 유지했다.
존 커비 백악관 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 19일 MSNBC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가능성은 없다고 재차 선을 그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19일 오전 3시30분쯤 백악관에서 나와 우크라이나 극비 방문을 위한 일정에 들어갔다.
백악관 풀 기자단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는 이날 오전 4시15분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이륙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평상시에 사용하는 보잉 747기를 개조한 에어포스원 대신 보잉 757기를 개조한 공군 C-32기에 탑승했다고 CNN은 전했다.
미 공군은 항공기의 콜사인(관제소 등이 항공기와 교신할 때 부르는 호칭)도 ‘에어포스원’ 대신 ‘SAM060’을 사용했다. SAM은 ‘스페셜 에어 미션'(Special Air Mission·특별공중임무)’의 줄임말로 미국 정부 고위 인사를 태운 항공기에 사용된다.
전용기 탑승 인원도 대폭 줄였다. 백악관에서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존 파이너 국가안보부보좌관, 케이트 베딩필드 백악관 공보국장 등이 탑승했다.
백악관 풀기자단도 통상 인원(13명)보다 적은 2명만 동행했다. 이들은 출발 전에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를 백악관에 넘겼으며 비밀 유지 서약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행 기자의 휴대폰 등 전자기기들은 키이우에 있는 미국대사관에 도착해서야 돌려줬다.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방문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전사한 영웅들을 위한 추모의 벽에서 추모를 하고 있다. 2023.2.20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
바이든 대통령이 탑승한 전용기는 19일 오후 5시13분 급유를 위해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1시간15분가량 급유를 마친 뒤 전용기는 오후 6시30분쯤 폴란드를 향해 다시 비행했다.
폴란드 남서부 제슈프까지 이동하는 1시간 정도의 비행 동안 미 공군기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무선 응답기(트랜스폰더)도 껐다. 제슈프에 도착한 바이든 대통령은 차량을 타고 1시간 동안 이동해 프셰미실 기차역에 도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곳에서 키이우까지는 기차로 이동했으며 대략 10시간 정도 후인 이날 오전 8시(미국 동부시간 오전 1시)에 키이우에 도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정상회담 등의 일정을 진행한 뒤 정오께 미국대사관을 방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오후 1시10분쯤에 열차를 타고 키이우를 떠나, 오후 8시45분쯤 폴란드의 프셰미실 기차역에 다시 도착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이 이뤄지기 전 러시아에 도착 시간을 통보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러시아에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키이우)를 방문할 것이라고 통보했다”며 “우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출발하기 몇 시간 전에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다만 “그러한 소통의 민감한 특성 때문에, 저는 그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우리의 메시지의 정확한 특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