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윤석열 대통령 국빈 초청으로 한미 관계가 훈풍을 타면서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주목받고 있다. 역대 7번째이자 12년 만의 국빈방문 성사로 양국 정상은 경제 분야에서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다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계에선 미국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와 반도체지원법 등 당면 과제들에서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적지 않다. 경영침해 및 기술유출 우려 등 독소조항에 있어 우리 정부·기업의 요청사항이 일부 반영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질 바이든 여사는 2023년 4월26일 국빈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맞이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후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은 지난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 역대 한국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은 6차례(이승만·박정희·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명박)에 불과하다. 바이든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 국빈방문은 지난해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내외 이후 두 번째다.
국빈방문 성사 배경으로는 한미 동맹 70주년의 상징성, 일제 강제징용 보상 발표에 따른 한일 관계 개선 움직임 및 대중국 동맹강화 등의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군사·안보적 측면과 함께 삼성전자, SK, 현대자동차 등 우리 기업들의 잇단 미국 현지 대규모 투자발표도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4월말 국빈방문 이전까지 우리나라와 미국 실무자 간 협상에서는 대북 확장억제 등 안보 이슈와 더불어 반도체지원법과 IRA 등 경제 현안들이 포괄적으로 테이블 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계는 강력한 자국우선주의 경제안보 정책 기조 하에서도 국빈방문을 계기로 우리나라 주력산업을 배려하는 예외를 미국이 허용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르면 이달 중 IRA 및 반도체지원법 세부 규정 등이 추가 공개될 예정이고, 국빈방문이 내달 말인 점 등을 감안하면 섣부른 기대감을 갖긴 이르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한미 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경제분야 공조·협력 강화 기조는 뚜렷해지는 형국이다.
국빈발표를 앞두고 우리정부의 긴박한 움직임도 이같은 기대감에 힘을 싣는 모양새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국이 윤 대통령 국빈방문 일정 등의 물밑조율을 한창 진행하는 시점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온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례적으로 우리 기업을 강력히 대변하고 나섰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지난 6일 미국 상무부의 반도체지원법 상의 재정 인센티브 세부 지원계획 공고와 관련해 “우려스럽다”며 상당한 수위의 발언을 내놨다.
더 나아가 “조건의 불확실성이 크다”, “기술유출 및 경영권 본질 침해 우려”, “금리인상·인플레이션에 따른 미국 투자비용이 상당히 높다” 등 우리기업을 적극 대변해 반도체지원법의 독소 조항들을 조목조목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장관은 “이번에 나온 지급 조건에서 나온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나 기업에 부담이 되는 조항들을 실제로 협약을 기업이 맺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완화되고 해소되도록 적극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2.7.12/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
이 장관의 이례적 강경 발언에 이어 산업부가 발빠른 행동에 나선 점도 이목을 끈다.
산업부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발표를 7시간여 앞둔 시점에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의 긴급 방미 출장 사실을 공개했다. 현지시간으로 8일부터 사흘간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상무부, 백악관 등 미 정부 고위급 인사 및 미 의회, 주요 싱크탱크 등과 만나 반도체 등 통상 현안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가드레일, 반도체 수출통제 등에 대해서도 미측에 우리 입장을 지속 설명할 계획”이라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안정성 등의 측면에서 우리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필요함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가드레일 세부조항 발표 등을 대비한 협의이지만, 윤 대통령 국빈방문 발표와 맞물리면서 양국 정상회담 전 사전조율의 성격을 띠게 됐다는 평가다. 양국이 반도체지원법과 IRA 등 세부 규정에서 일정 부분 타협 필요성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통상 정상회담의 경우 사전에 실무자들 간 치열한 샅바싸움을 통해 협상의 세부 내용이 조율된다. 이같은 외교적 관례를 감안하면 윤 대통령 국빈방문 전 카운터파트인 우리나라 산업부와 미국 상무부 간 반도체법 및 IRA 관련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특히 이번 윤 대통령의 방미 출장이 외국 정상의 방문 형식 중 최고 수준의 예우인 국빈방문인 만큼 미국이 ‘선물보따리’를 어느 수준으로 풀 것인지가 관건이란 평가다. 이 장관이 투자매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까지 공개 표명한 만큼 일부 독소조항 개선 및 우리기업의 중국 반도체공장 규제를 일부 완화하거나 유예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에서도 반도체 지원 조건에 대한 불만 여론이 있다”며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만남을 통해 조건이 다소 완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아무래도 대통령이 가는 만큼 미국이 한국 기업에 요구하는 조건이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고 했다. 다만 이 부회장은 “한국과 미국의 문제가 아닌 미-중 갈등이 원인”이라며 “반도체 생산시설 확보와 관련한 미국의 의지가 강한 만큼 근본 기조의 변경은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