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해진 글로벌 경기 침체 징조에 대외 의존도 높은 한국 경제가 벼랑에 몰리고 있다. 올해 1%대 중후반이 아닌 1%대 초반 성장 전망도 가시화하고 있다.
12일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가 한국 경제의 ‘저성장 고착 원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은행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올해 세계경제가 1.7%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직전 전망인 작년 6월보다 1.3%포인트(p) 내린 것으로, 앞서 2%대 성장률을 제시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국제통화기금(IMF)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불과 반년 만에 글로벌 성장 전망치의 거의 절반이 깎여 나간 것이다.
세계은행은 이 같은 전망과 함께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질 위험이 매우 클 정도로 글로벌 성장세가 둔화했다(Global growth has slowed to the extent that the global economy is perilously close to falling into recession)”고 전했다.
그러면서 “취약한 경제 환경을 고려했을 때 예상보다 높은 물가 상승률과 이를 잡기 위한 급격한 금리 인상, 코로나19 재확산이나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 그 어떤 새로운 악조건도 세계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봤다.
아이한 코제 세계은행 개발전망국장은 “글로벌 경제가 칼날에 서 있다”는 표현을 썼다.
세계은행의 전망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년 6월과 비교해 선진국의 95%, 신흥·개발도상국의 약 70%가 전망치 하향 조정을 겪었다.
특히 선진국 성장률이 작년 2.5%에서 올해 0.5%로 둔화할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지난 50년을 봤을 때 가장 급격한 수준의 성장 둔화다. 과거 이 정도 수준의 둔화는 세계 경기 침체를 일으켰다는 것이 세계은행의 판단 배경이 됐다.
1990~2023년 세계경제 성장률, 23년은 전망치 (자료 : 세계은행) |
세계은행의 전망이 현실화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대폭 떨어뜨리는 환경이 조성된다.
지금껏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은 주요 기관들 사이에서 1%대 중후반 수준으로 전망돼 왔다. 구체적으로는 △정부 1.6% △한국은행·한국금융연구원 1.7% △한국개발연구원 1.8% △한국경제연구원·산업연구원 1.9% 등이다.
그러나 해당 예측은 글로벌 경기 전망이 이번처럼 크게 나빠지지 않은 지난해 말쯤에 이뤄졌다. 예컨대 한은이 전망을 공개한 작년 11월만 해도 2023년 세계경제 성장률 최신 전망은 IMF의 2.7%, OECD의 2.2%, 블룸버그의 2.1% 등이었다.
세계 경제가 이보다 낮은 1%대 중후반 수준으로 성장할 경우 대외 수요가 줄면서 안 그래도 어려운 수출은 더욱 힘든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무역수지 적자는 악화하거나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으며, 여기에 여행·운송 등 서비스수지 적자가 계속된다면 경상수지 적자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번 글로벌 침체 경고로 인해 한국의 현 1%대 중후반 성장률마저 1%대 초반 또는 그 아래로 꺾일 위험성이 가시화한 셈이다. 실제로 지난 5일 기준 주요 외국계 투자은행(IB) 9곳의 올해 국내 성장률 전망은 평균 1.1%로 계산됐다.
한은의 지난 9월 분석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침체는 국내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침체는 대외 수요를 위축시켜 성장·물가를 동시에 둔화시키며 유럽의 침체는 국내 성장률을 낮추고 물가 상승률은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전문가들은 올해가 저성장 고착 원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는 교수·연구위원 등 경제·경영 전문가 85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올해가 저성장 고착화 원년이 될 것’이라는 데 응답자의 76.2%가 동의했다고 밝혔다. 응답자들이 전망한 올해 국내 성장률은 1.25% 수준이었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올해 우리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동반한 경기침체) 상황이 고조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며 “거시정책 운영에 있어 통화정책은 물가안정 못지않게 실물경제 위축을 최소화하고 금융안정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둘 필요가 있고, 재정은 민간투자 촉진과 기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지출을 확대하되 재정건전성과 대외신인도를 유지함으로써 대외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