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iPhone)이 모바일 컴퓨팅 시대를 연 것처럼 ‘비전 프로’(Vision Pro)는 공간 컴퓨팅 시대를 열 것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플 본사에서 열린 연례 세계개발자회의(WWDC 2023)에서 비전 프로를 공개하며 “애플의 모든 혁신 기술을 결합한 공간 컴퓨터”라며 설명했다. 비전 프로는 애플이 2014년 9월 공개한 애플워치 이후 9년 만에 새롭게 출시한 하드웨어 제품이다. 1천명이 넘는 개발자들이 7년 넘게 개발에 참여해 탄생시킨 애플의 야심작이기도 하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비전 프로는 개발자회의 첫날 마지막 순서에 전격 공개됐다. 무대에 오른 팀 쿡 최고경영자가 “원 모어 씽”(One more thing)이라고 운을 떼자 행사장엔 환호성이 터졌다. ‘남은 한가지 더’란 뜻의 ‘원 모어 씽’은 애플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MP3)·아이폰·아이패드 등 주요 신제품을 공개할 때 썼던 말이다. 애플워치 발표 뒤 9년 만에 신제품인 비전 프로를 공개하는 현장에서 스티브 잡스의 상징적인 대사가 재현된 것이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혼합현실 헤드셋이란 용어 대신 ‘착용형 공간 컴퓨터’라고 명명했다. 스키 고글 모양으로 헤드셋을 눈에 맞춰 쓰면 앱 화면과 영상 등이 현실 공간에 떠 있는 모습으로 구현된다. 눈동자 움직임과 목소리 등을 통해 앱을 실행하거나 멈출 수 있다. 손가락을 움직여 가상 화면을 키우거나 줄이는 기술로 영상을 최대 30m까지 키울 수 있어 어디서나 영화관 같은 분위기를 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비전 프로를 이용해 영상 통화(페이스타임) 하는 소개 영상에 관심이 집중됐다. 눈앞에 전화 상대방이 실물 크기로 보이고 앞에서 들리는 듯한 공간 음향 기술이 적용됐다. 실제 대화하는 듯한 경험을 준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자체 개발한 혼합현실 기기용 ‘비전 운영체제(OS)’와 12개 카메라, 5개 인식 센서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 2개, 마이크 6개 등 첨단 부품이 탑재됐다.
넘어서야할 건 가격과 배터리다. 일단 대당 가격이 3499달러(약 457만원)에 이른 터라 얼마나 수요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원을 연결해 사용할 수 있지만, 외장 배터리를 쓰면 최대 2시간만 사용할 수 있는 터라 긴 영화 한편을 끊김 없이 시청하기엔 한계가 있다.
애플 입장에서도 새 성장 동력이 절실하던 터다. 애플은 지난 2개 분기 동안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이 감소하는 성장 정체기를 맞았다. 컴퓨터 사업 매출이 급감하고 스마트폰 사업 매출은 정체됐기 때문이다. 팀 쿡 최고경영자가 완제품을 만든 뒤 충분한 시험을 거친 후에야 공개해 온 기존 관례를 깨고 비전 프로를 서둘러 공개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비전 프로의 판매는 반년 뒤인 내년 초 미국에서 시작된다.
비전 프로에 대한 외신 평가는 엇갈린다. 미국 <시엔엔>(CNN)은 “애플은 그간 시장 회의론이 틀렸다고 입증해 왔다. 엄청난 아이폰 기반 고객이 있는 애플의 진입이 혼합현실 헤드셋 산업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애플이 메타 헤드셋보다 3배 비싼 비전 프로로 메타버스 파티에 뛰어들었다. 아이폰 이후 가장 위험하고 도전적인 제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