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시간이 왔다. 올해 중국을 제치고 전 세계 인구 1위 대국으로 오른 데 이어 경제 규모도 식민 통치국이었던 영국을 누르고 5위로 올라섰다.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 정상회의를 이끌며 서방이라는 든든한 지원군도 얻었다. 인도는 이번 회의를 통해 강대국으로서 입지를 굳히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G20 정상회의가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오는 9일(현지시간)부터 양일간 열린다. 이번 회의에서는 기후 변화, 부채 구조조정, 가상화폐 규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안건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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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6월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국빈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2023.06.22/뉴스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
◇인도, 글로벌사우스-서방 연결하는 가교 역할 자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이번 회의를 세계 무대에서 인도의 입지를 드러내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남반구에 있는 개발도상국)와 서방을 연결하는 가교로서 인도의 역할을 보여줄 기회로 삼고 있다.
더군다나 국경 문제를 두고 중국과 날을 세우고 있는 인도는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할 만한 국가로 떠올랐다.
미국 시사 매거진 디 애틀랜틱은 “아시아의 또 다른 신흥 세력인 인도는 지역 안팎에서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중요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이것이 바로 미국이 인도에 적극적으로 구애해 온 이유”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다양한 외교, 경제, 안보 이니셔티브를 통해 남아시아, 동아시아, 서태평양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며 “인도가 이 계획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구 중심의 국제 회의에 염증을 느끼던 차에 인도가 의장국이 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인도 자와할랄 네루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해피몬 제이콥은 “이번 정상회의는 글로벌사우스가 국제 질서의 주요 이해관계자로 등극하고, 서방 국가들은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세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기에 이뤄졌다”며 “세계 양쪽 사이에 ‘수렴 지점’이 있어야 하며 인도는 정상회담에서 이를 제공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치솟은 식량 및 연료 가격, 기후 변화, 불평등 심화 등 전 세계를 휩쓴 문제들은 G20과 같이 서구가 지배하는 포럼이 실효성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가교 역할을 하려는 인도의 의지는 아프리카를 G20에 포함하자는 모디 총리의 제안으로 더욱 분명해졌다. 전 외교관 출신인 지텐드라 나트 미스라 인도 진달국제관계대 선임연구원은 “G20에 아프리카 연합을 포함하자는 제안은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려는 인도의 의지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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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5월21일(현지시간) 파푸아 뉴기니 포트 모르즈비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도서국 협력 포럼(FIPIC)서 개막 연설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
◇모디, 세계적 정치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열망 드러내
인도 스스로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기대감을 등에 업고 국제무대에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인도는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데, 모디 총리로서는 2021년 집권 여당의 지방 의회 선거 실패를 딛고 민심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BJP는 총선 바로미터인 지방의회 선거 결과 5개 지역 중 4곳에서 완패했다.
BBC는 “전통적으로 인도의 외교 정책은 파키스탄이나 중국 등 인접국이나 미국에 관한 것이 아닌 한 선거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는다”며 “그러나 모디 총리 아래에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인도인들은 열망이 강하고, 세계에서 어떻게 비치는지 관심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이콥 교수는 BBC에 “모디는 자신을 세계적인 정치가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한다”며 “G20에서 열리는 크고 성공적인 쇼는 그런 이미지를 더해줄 것”이라고 부연했다.
미국외교협회(CFR)의 만자리 채터지 밀러 선임연구원 역시 “모디와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은 의장국이라는 직책을 활용해 인도가 이제 모디 주도 하의 글로벌 강국임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도는 G20 개최에 1억 달러(약 1335억원)가 넘는 예산을 사용했다. 50개 도시에서 200회가 넘는 회의가 열렸고, 전국 곳곳에는 G20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걸렸다.
BBC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인도 정부가 보내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며 “인도가 세계무대에 등장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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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우)이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에 참석한 모습. 2019.11.14.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윤영 기자 |
◇푸틴·시진핑 불참…공동성명 도출 못할 경우 역풍
G20 정상회의에서 공동성명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모디 총리에게는 이번 회의가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
회의에서 논의될 안건의 이해 당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은 정상 대신 장관급 인물을 보내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이후 외국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국경 문제 등 여러모로 껄끄러운 인도와의 만남을 피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미 싱크탱크 랜드 연구소의 데릭 그로스먼 연구원은 “시 주석은 인도가 세계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싶어 할 것”이라며 “시 주석의 불참으로 정상회의의 의의가 저평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도가 지난 12월 G20의 순회 의장국을 맡은 이후, 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G20의 어떤 장관급 회의에서도 단일 공동 성명이 나오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 대신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공동성명에 러시아 측 입장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결국 이번 정상회의는 모디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을 가늠할 시험대가 됐다.
채터지 연구원은 “G20 정상회의는 인도에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며 “인도는 중재자로서 외교 및 개발 의제에 대한 협력과 어느 정도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기존 파트너십을 신중하게 탐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를 해낼 수 있다면 모디 총리는 자신이 원하는 입장을 확고히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인도의 주장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며 “위기 상황에서 합의를 이루는 데는 숙련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