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6세.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이날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밀라노의 산라파엘레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만성 골수 단핵구성 백혈병을 앓아온 그는 산라파엘레 병원에서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전후 이탈리아의 최장 총리로 장수했던 그는 재임 시절 각종 부패 스캔들과 탈세 혐의, 성추문 등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던 ‘스캔들 제조기’라는 오명을 받아 왔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물의와 언론 탄압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승리를 거듭하는 그를 본떠 ‘베를루스코니즘’이라는 말이 탄생하는 등 높은 인기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10일 오후(현지시간) 이탈리아 라퀼라 재정경찰 부사관학교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2009.07.10 <사진: 청와대> © News1 최종일 기자 |
◇거물 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
1936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진공청소기 영업직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나이트클럽, 유람선 등을 전전하며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후 부동산과 미디어 재벌로 거듭난 그는 1993년 ‘전진이탈리아'(FI)를 창당해 우파정당들과 연정을 구축해 처음으로 총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탈세혐의로 연정이 붕괴돼 7개월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이후 좌파가 주도한 사법 박해의 희생자라고 주장해 2001년 총선에서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하게 됐다.
2006년 총선 패배로 물러났지만 2년 뒤 우파 연정을 다시 꾸리며 총리실로 복귀해 총 세 차례 총리에 올랐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2005년 제60차 유엔총회 고위급 본회의 도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또 2009년 7월 이탈리아 아퀼라 시에서 개최된 주요 8개국(G8) 확대회의장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재임 기간 동안 경제적 성장을 약속하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도리어 재임 기간 경제 성장은 정체됐고 국가 경쟁력도 추락하는 등 국가부도 위기까지 가기도 했다.
그는 섹스 스캔들이 터진 상황에서 유로존 재정위기로 인해 국채 금리가 위험 수준까지 상승하자 2011년 불명예 퇴진했다.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수도 로마 포폴로광장에서 마테오 살비니(왼쪽부터) 동맹(Lega) 대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진이탈리아(FI) 대표 겸 전 총리 그리고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당(FdI) 대표가 막판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2022.09.22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
◇’스캔들의 제왕’과 ‘문제적 입’
그의 경제 정책 실패만큼보다 더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바로 스캔들이다.
그는 성추문을 빼놓고 얘기할 것이 없는 정치인으로 불릴 정도인데, 2010년 총리 재임 중 자신의 호화 별장에서 배우, 쇼걸 등 젊은 여성들을 모아놓고 일명 ‘붕가붕가 파티’로 불리는 섹스 파티를 수차례 열어 논란을 빚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모로코 출신 댄서 ‘루비’에게 수천유로를 건네고 성관계를 한 혐의로 기소돼 2013년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대법원은 베를루스코니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2013년에는 탈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마피아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받아 왔지만 지속적으로 부인했다.
그의 스캔들만큼이나 문제적이었던 그의 입도 비난을 샀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이슬람과 유대인은 물론 성소수자와 여성을 향한 혐오발언을 내뱉기도 했고 이러한 발언으로 이탈리아의 외교관계가 파탄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오랜 친분을 과시하며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있다고 말하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2005년 11월19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당시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에게 십자가를 선물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
◇’국제적 망신’ 비난에도 여전한 인기
퇴임 이후에도 베를루스코니는 전후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총리직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원로 대접을 받았다.
그의 인기에 힘입어 2018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전진이탈리아는 두 극우 정당 동맹당, 이탈리아형제당(FD)과 중도 우파연합을 결성해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2020년 총선에서도 이들 우파 연합이 약진해 극우 이탈리아형제당 소속 조르자 멜로니 후보를 총리로 당선시켰다.
이에 지난해 9월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정치에 복귀하기도 했다.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이탈리아에서는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교통 장관은 “오늘 위대한 이탈리아인이 우리에게 작별을 고했다.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모든 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 나는 위대한 친구를 잃었다. 나는 망연자실해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그를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 칭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치켜 세웠다.
그가 구단주로 있던 축구팀 AC밀란 역시 “깊은 슬픔에 잠긴 AC밀란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별세를 애도하며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추모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2009년 3월2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자유국민당(People of Freedom)’ 회의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스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