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자녀 학교폭력 논란으로 물러나면서 26일 대통령실을 향한 부실 검증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도입한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가 자녀 학폭 문제를 거르지 못하면서 인사 검증 체계에 구멍이 생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학폭 문제가 자녀와 관련된 사항인 탓에 검증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면서 개선 방안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언론 브리핑을 통해 정 변호사 인사 검증과 관련해 “검증에서 문제가 걸러지지 못한 부분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고 밝혔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을 취소했다. 정 변호사는 지난 24일 대통령 재가를 거쳐 제2대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이날부터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자녀 학폭 논란이 제기되면서 25일 사의를 표명했다.
대통령실은 정 변호사 인사 검증 과정에서 부족함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 대변인은 “현재 공직자 검증은 공개된 정보, 합법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정보, 세평 조사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학폭이) 후보자 본인이 아닌 자녀와 관련된 문제여서 미흡한 점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자녀 문제처럼 공개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임명 전에 살펴보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26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2.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현행법에서 자녀와 관련해 검증할 수 있는 부분이 딱 규정돼 있다”면서도 “국적이나 주민등록, 범죄경력 등은 있지만 학교생활기록부나 원·피고 소송 진행 부분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 자녀 학폭 문제가 5년 전 언론을 통해 보도됐지만 인사 검증 과정에서 파악되지 못한 것을 두고도 대통령실은 한계를 언급했다.
핵심 관계자는 “언론보도에 익명으로 나왔기 때문에 관계자가 아닌 사람이 알기는 굉장히 어렵다”며 “경찰 세평 조사에서도 이 부분은 걸러지지 못 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도입한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실이 지난해 9월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해당 질문서를 보면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 원·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사·행정소송이 있는지’ 묻는 항목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질문서에 학폭과 관련된 질문이 없다”며 “그러면 그걸 전혀 못 걸러내느냐, 그걸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은 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해명했다.
질문서가 가진 ‘시스템상 문제’ 때문에 자녀 학폭 문제까지 걸러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 2023.2.24/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
공직 후보자가 자녀 학폭 문제로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하더라도, 사전 질문서에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결격 사유를 적발하기 어려운 셈이다.
정 변호사가 검찰 출신 인사라는 점도 부실 검증 원인으로 지목되는 사항으로 꼽힌다.
정 변호사는 부산 대동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과는 사법연수원 27기 동기다.
대통령실 내 고위공직자 인사 추천·검증 등을 수행하는 이원모 인사비서관과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도 모두 검찰 출신이다. 현 정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시스템을 모두 검찰 출신 인사가 맡고 있어 같은 검찰 출신 인사의 부적격 요인을 찾아내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전날 정 변호사가 사의를 표명한 지 4시간30분 만에 신속하게 임명을 취소한 데 이어 대통령실은 이날 인사 검증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검증을 위해 무리하게 자료를 수집하지 않고 있다”며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검증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 2023.2.24/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
대통령실은 또 학폭 근절 의지도 나타냈다.
최근 학폭 문제를 다룬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로 촉발된 학폭에 관한 사회적 공분이 정 변호사 자녀 논란과 맞물려 파장이 더 커질 수 있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뉴스1과 한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학폭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문제를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논의 중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정 변호사 아들이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해 다니고 있는데 학내에서 내부 징계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는 질문에는 “서울대에서 답변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