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캄보디아에서 국내로 송환된 한국인 피의자들에 대해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이들 대다수가 같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 피싱·로맨스 스캠 등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지면서다. 온라인에는 이들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된 사진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2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21일) 송환 피의자 64명 중 59명에 대해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들의 혐의는 각각 로맨스 스캠, 리딩방 사기, 보이스 피싱, 노쇼 사기 등이다. 일부 피의자에게는 범죄단체 조직 및 활동 혐의도 적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한국인 대학생 박 모 씨(22)가 캄보디아 현지에서 범죄조직의 고문 끝에 숨진 사실이 알려지자, 캄보디아 이민청 등에 구금된 이들에 대한 송환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동정 여론이 일부 있었다.
하지만 송환 피의자 대부분이 지난 7월과 9월 등 총 두 차례에 걸친 캄보디아 당국의 범죄단지 단속을 통해 검거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바뀌었다. 캄보디아 현지에서 감금 및 고문 피해를 입는 등 강요에 의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명하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석방된 이들은 소수다.
이들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는 보이스 피싱 피해자 등의 증언도 잇달아 나왔다. 이들 중 일부는 송환 피의자들 가운데 자신에게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경찰서나 변호사 등을 통해 문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피의자가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노출한 팔·다리 이레즈미(야쿠자 문신을 가리키는 일본어)는 불이 붙은 부정적인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시민들 사이에선 이들을 “왜 데려왔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30대 직장인 홍 모 씨는 “혐의자이지만,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고 감금과 고문을 당했다고 해서 일단 빨리 송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모습을 보니 폭력조직처럼 보여 전세기를 띄운 데 들어간 세금 생각이 먼저 났다”며 “현지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왜 데려왔을까’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대 대학생 김 모 씨는 “현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사기 범행을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처벌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캄보디아 내 범죄조직에서 활동하던 중 감금·고문을 당했더라도 우리 국민을 상대로 여러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일단 송환 후 조사를 통해 처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대표변호사는 “저지른 혐의에 대해 죗값은 당연히 치러야 하는 것”이라며 “추가적인 범죄를 막기 위해 송환을 해야 하고, 캄보디아에 남아있는 범죄 피의자들도 조속히 송환해 죄에 대해선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일부 피의자들은 범죄를 저지르러 캄보디아에 간 것이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해 갔다고 했지만, 경제적인 피해자가 생긴 것에 대해선 필요한 범위 내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비판 여론을 이유로 피의자들에 대한 법적 조치에 있어 절차상 문제가 생겨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다른 변호사는 “국민적 관심이 큰 만큼 이들의 범죄 사실이 계속 공개되고, 절차도 통상적인 경우에 비해 이례적으로 급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며 “절차상 법적 문제가 발생하면 추후 공소 유지나 유죄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스레드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송환 피의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는 캄보디아 당국 홈페이지와 현지 언론 등에 실린 사진으로, 포승줄에 묶인 채 이동 중인 송환 피의자들의 모습 등이 별도의 모자이크 처리 없이 담겨있다.
캄보디아 등 일부 국가는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공개시 엄격한 법적 요건을 적용하는 한국과 달리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피의자) 얼굴을 가려주는 나라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캄보디아 당국이 한국인 피의자들의 얼굴을 공개한 게 “국제 기준에 의하면 그렇게 문제 될 것은 없는 것”이라며 “해당 국가의 주권에 따른 결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