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주둔 중이던 쿠르드 민병대가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동참해 이란 국경을 넘어 지상전을 개시했거나 곧 개시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이어지고 있다.
약 30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쿠르드족은 독립국을 이루지 못한 채 튀르키예와 시리아, 이란, 이라크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이 지상군 투입을 꺼리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참전할 경우 이번 전쟁에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라크 관리들과 쿠르드 민병대 고위 인사들을 인용해 쿠르드 세력이 이란으로 진입할 수 있는 무장 부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쿠르드족 반군은 반(反)이란 세력 중 가장 조직력이 뛰어난 세력으로 평가되며, 훈련된 전투원을 수천 명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내 쿠르드족은 오랜 기간 이란 정부의 탄압을 받아 왔으며, 일부는 이라크에서 여러 해 머물러 왔다.
쿠르드 민병대가 일찍부터 이런 상황에 대비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나온다. 악시오스(Axios)에 따르면 지난 22일 이라크에 거점을 둔 이란 반체제 쿠르드 단체 5곳이 ‘이란 쿠르디스탄 정치세력 연합’ 결성을 발표했다.
소식통은 이란 정권을 겨냥한 공격 준비의 일환으로 이란계 쿠르드 분파들이 최근 몇 주간 이라크 국경 쪽 캠프에 주둔하던 조직원 수백 명을 이란 쪽으로 이동시켰다고 전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과 미국 폭스뉴스 등은 이미 쿠르드 민병대가 이란 국경을 넘어 진격을 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쿠르드족 반군 관계자들은 AP 통신에 “미국이 지원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모사드가 쿠르드 세력을 활용해 지상 공세를 지원하자는 구상을 제시했고, 이후 단계에서 CIA가 합류했다는 것이다.
CIA는 전쟁이 본격 시작되기 전부터 이란 불안정화를 위한 비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쿠르드 세력에 소형 화기(Small Arms)를 제공해 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한때 쿠르디스탄 지역에 양국 화력이 집중된 것도 쿠르드 민병대의 진격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나온다. 영상과 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공습은 이라크와 이란 국경에서 이란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인근 지역에 집중됐다.
현재 미국 관리들은 쿠르드 민병대의 이란 진입이 군사적으로 유용한지 여부를 두고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복수의 미국 관리를 인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정권 전복을 위해 이란 무장단체를 지원하는 데 열려 있으며, 대통령이 근래 쿠르드족 지도자와 통화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쿠르드 세력을 무장시켜 이란에서 대중 봉기를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북부 이라크에 있는 우리 기지와 관련해 쿠르드 지도자들과 실제로 통화했다”고 확인했다.
이어 “하지만 대통령이 그런 계획에 동의했다는 보도는 완전히 거짓”이라고 덧붙였다.
이란 쿠르드 분파들도 지상 공세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한 쿠르드 소식통은 지상 공세가 이번 주 후반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각 분파가 이란 진입을 위해 미국의 ‘그린 라이트’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쿠르드 세력은 탱크나 중화기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아 이란의 신정 체제를 실제로 위협·전복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정권 교체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란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페르시아계 주민들에 비해 쿠르드계 주민들이 소수인 점도 진입을 쉽지 않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란의 인구는 약 9000만 명인데, 그중 쿠르드족은 약 600만~9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란 반(半)관영 타스님 통신은 일람·케르만샤·서아제르바이잔 등 3개 주에 주재하는 자사 기자들을 인용해 “지금까지 국경에서 아무 소식이 없다”고 관련 보도들을 부인했다.
이란은 쿠르드 민병대가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이라크에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라크 고위 관리 2명은 이라크 정부가 쿠르디스탄 지역 당국에 쿠르드 민병대가 국경을 넘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지역 당국 역시 이 요청에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오랫동안 쿠르드 민병대와 협력해 왔다. 그러나 1991년 걸프전 이후 이라크 내 쿠르드족의 봉기를 유도한 뒤 이라크군의 쿠르드족 학살을 방관한 전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