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첫해 최저임금이 올해(1만 30원)보다 290원(2.9%) 오른 1만 320원으로 확정됐다.
역대 정부 첫 해 인상률로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노동계와 경영계가 외환위기급으로 평가되는 최악의 경제 상황 극복을 위해 한발씩 양보하며 17년 만에 합의로 최저임금을 결정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2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이같이 의결했다. 앞서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심의촉진구간(1만210~1만440원) 중간 수준에서, 근로자위원 5명과 사용자위원 9명이 공익위원 안에 동의하는 방식으로 합의가 성사됐다. 최저임금이 표결 없이 합의로 결정된 것은 2008년 이후 17년 만이다.
노사 합의의 배경에는 외환위기 급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 ‘극단적 충돌은 피하자’는 노사 간 인식 공유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경영계는 회의 직후 입장문을 내고 “이번 결정은 당면한 복합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사가 기존의 갈등을 반복하기보다는 각자의 입장을 일부 양보하고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하며 이뤄진 합의의 결과”라고 밝혔다.
이어 “합의 과정에서 소상공인연합회 위원들의 강한 반대 의사가 있었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결정에 이르렀다”며 “경영계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이에 따른 부담과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실질임금의 하락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노동계 쪽에서도 물론 아쉬움은 있었다. 근로자위원 9명 중 민주노총 소속 4명의 위원들은 공익위원의 심의 촉진 구간 상한선(1만 440원)이 터무니없이 낮다고 반발하며 회의장을 중도 이탈하기도 했다.
끝까지 남아 노사 합의를 관철시킨 한국노총은 합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내년 최저임금 수준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비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정부는 저임금 노동자 생계비 부족분을 보완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7년 만의 노사 합의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역대 정부 첫 해 인상률과 비교할 때 이재명 정부의 인상률은 낮은 수치다. △김영삼 정부 7.96% △김대중 정부 2.7% △노무현 정부 10.3% △이명박 정부 6.1% △박근혜 정부 7.2% △문재인 정부 16.4% △윤석열 정부 5.0% 등과 비교하면,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상황을 제외하곤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부는 현재의 경제 상황을 제2의 IMF 위기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지명 후 첫 출근길에 “지금은 제2의 IMF와 같은 어려운 상황”이라며 “민생과 통합 두 가지를 매일 (마음에) 새기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은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한 이유에 대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8%로 굉장히 낮고,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1.8%, 취업자 증가율은 0.4%가 되는데, 이런 지표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작년보다는 올해가, 올해보다는 내년이 경기 상황이 안 좋은 걸로 판단되기 때문에 그런 지표들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결국 최임위 공익위원들은 노동계의 실질임금 보전 요구와 경영계의 인건비 부담 우려 사이에서 양측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파국은 피할 수 있는 ‘중간값’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정권 초반 ‘노동존중’을 내세운 이재명 정부로서도 지지율만 신경 쓰는 쉬운 정책이 아닌 노사 모두를 아우른 실용적 결정을 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익위원들이 도출한 최저임금 심의촉진구간에 대해 물가·성장률 전망에 무게를 둔 것으로 분석하면서도, 법적 취지에 비춰볼 때 여전히 최저임금 제도가 기준이 불분명하고 공익위원들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준 중위소득은 복지정책의 기준인데 올해 1월부터 6%가 올랐는데, 최저임금 인상률이 이보다 낮다는 것은 납득되는 수치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공익위원들이 이번에 적용한 심의촉진구간 산식을 두고도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객관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나왔다. 최저임금법에는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을 반영하라고 명시돼 있지만, 이번 산식에 포함된 ‘취업자 증가율’ 같은 법적 근거 없는 지표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은 “심의촉진구간은 더 이상 논의가 진전이 되지 않을 때 노사 논의를 촉진시키기 위해 내는 구간”이라며 “매년 내는 시점과 상황이 모두 다르다. 매년 같은 근거를 사용할 수도 없기에 (필요한 지표를 통해)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