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하원이 30일(현지시간) 45일짜리 임시예산안을 처리했다. 10월1일 오전 0시부터 시작될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을 3시간 앞두고였다.
미 의회 처리 문턱을 넘어선 임시예산안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오는 11월17일까지 정부에 예산을 지원하게 된다.
임시예산안 처리로 연방정부 셧다운 위기는 일단 45일 뒤로 미뤄졌지만, 해당 기간 내에 2024회계연도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셧다운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미 상원은 이날 오후 8시께부터 본회의를 열고 하원에서 넘어온 임시예산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했다. 임시예산안에 대한 표결은 호명투표로 진행됐으며, 예산안은 오후 9시께 찬성 88표, 반대 9표로 통과됐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상원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초당적 정신이 승리했다”며 “미국 국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미 하원은 셧다운 시점 9시간여를 앞둔 이날 오후 2시50분쯤 다수당인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제안한 임시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찬성 335표, 반대 91표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45일짜리 임시예산안의 의회 처리 절차는 모두 마무리됐다. 임시예산안은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임시예산안은 향후 45일간 정부 지출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되 공화당내 반대가 많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제외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요구한 재난지원 예산(160억 달러·21조6800억원)이 포함됐다.
이번 임시예산안 통과 과정은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당초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간 입장차는 물론 공화당 내부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연방정부 셧다운 위기는 점차 커졌다.
특히 매카시 의장이 새 회계연도 예산안을 협상할 시간을 벌기 위해 지난 29일 추진했던 임시예산안이 민주당 전원과 공화당내 강경파 21명의 반대표로 부결되면서 연방정부 셧다운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부결된 임시예산안은 연방정부에 대한 예산 지원을 한달(10월31일)간 연장하되 국방·보훈·국토 안보·재난 구호를 위한 자금을 제외한 정부 지출을 전반적으로 약 30% 삭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앞서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오는 11월17일까지 정부 지출 규모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며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61억5000만 달러(약 8조3000억원)와 재난구호 예산 59억9000만 달러(약 8조1000억원)가 포함된 별도 임시예산안에 합의했지만, 매카시 의장은 상원에서 해당 예산안이 넘어오더라도 상정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상태여서 교착상태를 깰 해법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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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킴 제프리스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30일(현지시간) 하원이 연방정부의 셧다운을 막기 위한 임시예산안을 통과시킨 후 워싱턴DC 의사당에서 기자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2023.09.30. © 로이터=뉴스1 © News1 김현 특파원 |
그러나 29일 임시예산안 부결 직후 매카시 의장이 이른바 민주당 및 자당 강경파들의 요구와 상원의 별도 임시예산안 등을 반영한 ‘클린 임시예산안’이라는 절충안을 제시하면서 돌파구가 마련됐다.
매카시 의장 등 하원 공화당 지도부는 당내 강경파 설득에 들어갔지만, 공화당만으로 ‘클린 임시예산안’을 통과시킬 정족수를 확보할 수 있을지불확실했다.
상원은 당초 이날 중 자체 합의한 임시예산안을 표결 처리할 예정이었지만, 투표를 미룬 채 하원의 상황을 주시했다.
매카시 의장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제외에 대한 민주당 등의 우려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이미 30억 달러 (자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45일간 임시예산안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예산을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우여곡절 속에 이른바 ‘매카시 안’은 이날 오후 하원 본회의에 상정됐고, 민주당의 전폭적인 협조를 통해 찬성 335표, 반대 91표로 통과됐다. 반대표는 민주당에서 1표, 공화당에서 90표가 나왔다.
하원 문턱을 넘어선 임시예산안은 상원으로 송부됐지만, 일부 상원들이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이 제외된 데 대한 우려를 제기하면서 표결이 계속 지연됐다.
상원 민주당과 공화당 지도부는 각당 의원들에 대한 설득에 들어갔고, 결국 오후 8시께 본회의를 열어 임시예산안에 대한 호명 투표를 진행했다.
임시예산안이 미 의회 문턱을 넘어서면서 셧다운 위기의 급한 불은 일단 끄게 됐다.
그러나 앞으로 45일 안에 2024회계연도 정식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셧다운 위기는 재차 도래할 수 있다.
실제 정식 예산안을 둘러싼 쟁점은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과 국경 보안 예산 등 민주당과 공화당간 입장차가 큰 예산들이 여전한 데다 정부 지출 예산 규모와 처리 방식 등을 둘러싼 상원과 하원간은 물론 공화당 내부 입장차도 큰 상태다.
이번 임시예산안 처리의 주역인 매카시 의장의 하원의장직 유지 여부도 정식 예산안 처리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 언론들은 매카시 의장이 셧다운을 막는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하원의장직을 유지하는 데 있어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간 공화당 강경파들은 매카시 의장을 향해 만약 예산안 처리를 위해 민주당과 협력할 경우 불신임 투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당장 이번 임시예산안 처리 직후 강경파들 사이에선 매카시 의장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다수의 공화당 강경파들은 향후 며칠 내에 매카시 의장의 불신임 투표 추진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강경파인 랠프 노먼(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은 “이것은 항복”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매카시 의장은 “누군가가 제가 이곳에서 어른스럽게 행한다는 이유로 (저를) 제거하고 싶다면 그렇게 한번 해 보시라”면서 “하지만 저는 이 나라가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우리 군과 국경 요원, 정부로부터 약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