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했지만, 대다수 서민층의 소비력이 구조적 제약으로 회복되지 못하면서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인 개인 소비 지출(PCE)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지난 11일(현지시각) 배런스 보도에 따르면, 소비에 민감한 하위 60% 계층이 치솟는 가계부채와 임금 정체, 신용 긴축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어 연준의 통화 정책 전달 경로가 막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前) 백악관 경제자문 자문위원인 재러드 번스타인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70%가 개인 소비에 의존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소비자의 움직임이 곧 경제 사이클”이라고 지적했다. 연준의 금리 인하라는 완화적 정책이 경제 전반의 활력으로 이어지기까지 상당한 시차가 발생할 수 있고, 정책 효과가 특정 계층에만 국한되는 ‘K-자형’ 회복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통화 정책의 ‘K-자형’ 비대칭 효과, 소비 양극화 심화
연준의 통화 정책이 부유층 소비 진작에 더 빠르게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연준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지난 10월 연설에서 미국 가계 소비의 비대칭 구조를 명확히 설명했다. 최고 소득층 10%가 개인 소비의 22%를 담당하며, 상위 20%는 총 소비의 35%를 차지한다. 이들은 주식 등 자산 시장과 연계된 부(富)의 비중이 매우 편중되어 있어 고물가나 실업률 상승, 경기 둔화 등 경제 변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연구된다.
반대로, 하위 60% 가계는 총 소비의 45%를 담당하지만 총 부의 15%만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물가, 금융 조건, 일자리 가용성에 “훨씬 더 영향을 받는다”.
월러 이사는 비즈니스 접촉 정보를 인용하여, 저소득 및 중간 소득 가구들이 치솟는 물가와 불확실성에 직면해 이미 “할인과 프로모션을 찾으려는” 소비 행태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정책 무력화의 구조적 원인은 가계 부채의 성격 때문이다. 모건스탠리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가계 부채의 약 85%는 고정 금리 방식이기에 금리 인하가 월별 대출 상환액을 즉시 개선시키지 못한다.
신용카드는 금리가 정책 금리에 연동되지만, 정책 금리 1%포인트(p) 인하 시 신용카드 이자율은 그 3분의 2 수준만 내려가 그 혜택이 매우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평균 월 $750에 달하는 자동차 대출의 경우, 금리가 1%p 떨어져도 월 납입액이 약 $20 낮아지는 데 그치는데, 이러한 감소분은 소비 행태를 의미 있게 바꿀 수 없다.
실질 임금 상승률 둔화 속 가계부채 18조5900억 달러 사상 최고
금리 인하의 수혜를 받아야 할 저소득층은 부채 규모 증가와 질적 악화, 그리고 실질 소득 정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미국 총 가계부채 잔액은 1970억 달러 (약 288조8800억 원) 증가하여 18조5900억 달러(약 2경7260조 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와 함께 신용카드 잔액은 전 분기 대비 240억 달러(약 35조1900억 원) 늘어 1조2300억 달러(약 1804조 원)에 이르는 등 가계의 차입 부담이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차입 증가는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는 저소득층의 ‘고통스러운 차입’을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매력은 팬데믹 시기 쌓았던 저축이 고갈된 가운데 정체되었다.
2025년 8월 기준 생산직 및 비관리직 직원의 실질 평균 시급은 전달과 비교해 변동이 없었다고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보고했다. 이는 임금 상승분(0.4%)이 물가 상승분(0.4%)과 동일해지면서 저임금 노동자의 구매력이 사실상 평준화되었다는 의미이다.
부채의 질 또한 크게 악화되었다. 특히 저소득 차주들의 연체율 상승이 두드러진다. 피치 레이팅스(Fitch Ratings)의 분석에 따르면, 신용점수 670점 미만인 서브프라임 차주 중 60일 이상 자동차 대출 연체자가 2021년 대비 두 배 증가했다. 2025년 6월에는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출의 60일 이상 연체율이 6.31%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에 이르렀다.
이러한 연체율 증가는 금융권이 대출 위험을 높게 인식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신규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든다.
관세발 내구재 가격 폭등과 3년째 지속된 은행의 대출 문턱 상향
연준의 완화적 통화 정책의 효과를 제한하는 외부 충격과 내부 금융 시스템의 경직성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첫째, 금융권의 신용 긴축이다. 은행들은 연준이 금리를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출 태도를 완화하지 않고 있다. 연준의 선임 대출 담당자 의견 조사(SLOOS) 결과, 은행들은 3년째 소비자 신용 기준을 강화해 왔으며, 2024년 4분기에도 대출 기준을 강화했다. 이는 저소득층이 금리 인하를 이용해 신규 대출을 받거나 기존 부채를 재융자(리파이낸싱)하여 현금 흐름을 개선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은행들이 연체율 증가를 우려하며 위험 관리에 치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둘째, 무역 정책으로 인한 관세 충격이다. 저소득층은 자동차, 가전제품 등 내구재 구매 시 금리 민감도가 높은데, 이 품목들의 가격이 관세로 인해 치솟았다. 예일대 버짓 랩(Budget Lab)의 분석에 따르면, 2025년 도입된 신규 관세로 인해 소비자들이 직면한 평균 유효 관세율은 18.0%로 1934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로 인해 2025년 상반기 개인 소비 지출(PCE) 내구재 가격은 1.7% 상승했다. 이는 2024년 동기 -0.6% 하락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관세발 물가 상승은 가구당 연평균 1800달러(약 264만 원) 상당의 실질 소득 손실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리 인하로 얻을 수 있는 월 20달러 정도의 대출 비용 절감 효과가 관세로 인한 수백 달러의 필수 소비재 가격 인상 폭을 상쇄하지 못하는 것이다.
연준은 금리 인하로 수요 측면을 지원하려 하지만, 무역 정책은 공급 측면에서 비용을 직접 증가시켜 통화 정책의 목표 달성을 방해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연준의 금리 인하는 경기 침체를 막고 수요를 지탱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대다수 서민층이 겪는 가계부채의 구조적 경직성(85% 고정 금리), 금융권의 신용 경색, 그리고 관세로 인한 내구재 가격 상승이라는 복합적인 악재에 직면해 그 효과가 희석되고 있다.
소비가 집중된 소수 부유층에게는 긍정적이나, 소비 민감도가 높은 다수 서민에게는 금리 완화가 실제 구제를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연준의 정책 수단은 생계 비용을 즉시 낮추거나 특정 계층의 임금을 올려줄 수 없기 때문에, 소비 기반 약화가 경기 사이클 전체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