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근로자 체포·구금 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K-비자 신설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인 전용 비자 제도를 만들어 국내 기업이 안정적으로 미국에 인력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는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IFC에서 ‘미국 비자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비자 정책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필요한 정책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제임스 김 암참 회장은 환영사에서 “최근 조지아 사태는 미국 비자와 근로 규제를 준수하는 게 한국 기업에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잘 보여줬다”며 “지금이 K-비자 프로그램을 신설할 적기”라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랜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영상 축사를 통해 “외국 투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리는 우리나라의 비전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한국 임직원이 미국에 와서 공장에서 일할 미국인을 훈련하는 과정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해 양국이 번영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민법인 대양 정만석 미국 변호사는 기조 강연에서 K-비자로 불리는 한국인 전용 E-4 전문직 취업비자 제도 신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현재 의회에 발의된 상태인 한국 동반자법(PWKA)의 조속한 통과 필요성을 제기했다.
PWKA는 전문 교육을 받은 한국인 기술자들이 E-4 비자를 연간 최대 1만5000개 발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미국에서 일하기 위해 받을 수 있는 비자는 제한적인데 대미 투자가 활발한 한국에는 별도의 전용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현재 미국은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국가에 대한 특별 비자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기업들이 편법으로 주로 사용했던 B1(상용) 비자나 ESTA(90일 이내 무비자)와 관련해 “이는 임시방편일 뿐 전략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렇게 불완전한 편법을 사용하도록 내모는 현 제도의 취약성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게 한국 동반자법이 필요한 이유”라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이어 “(K-비자의) 혜택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전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공급망 위협을 줄일 수 있다. 한국의 추가 투자도 가능해진다”며 “한국은 전문 인력들이 글로벌 경험을 쌓을 수 있고 프로젝트 지연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별로 비자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국내 대기업의 미국 투자에 있어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한양ENG의 이종근 대표는 “L1(주재원)비자, E2(투자)비자를 2022~2023년에 신청할 때는 1~2명 정도만 떨어졌는데 올해 들어선 95명 중 40명 정도가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어 “가능하면 미국인을 고용해 같이 일하려 하지만 미국 고용 시장에서 기술 좋은 분들을 찾기가 어렵다”며 “양국 정부가 얘기해서 프로젝트 기반으로 비자를 풀어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도 K-비자 신설 전에는 특정 프로젝트별로 비자 심사에 탄력성을 부여해 달라거나 비전문직 취업 비자인 H2B 쿼터를 확대해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기업들을 대상으로는 근로자의 직무에 맞는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비자 심사 시 원하청 구조를 인정하지 않는 만큼 협력업체 직원을 파견할 경우 현지 법인이 직접 고용하는 식으로 원하청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 시작에 앞서 진보당 서울시당 당원 10여 명이 행사장을 찾아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조지아 구금사태 사과가 먼저다’ 등의 피켓을 든 채 “트럼프의 약탈적 경제 압박을 거부한다” “3500억 달러 청년 일자리에 투자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10여분 만에 세미나 현장에서 철수했다. 다만 행사 관계자 눈을 피해 남아있던 한 당원은 제임스 김 암참 회장의 개회사 발언에 앞서 “한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할 게 아니라 미국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외치다 제지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