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여야 대표 회동을 주선하며 극한으로 치닫던 여야 대치 국면에 숨통을 틔웠다. 여야가 ‘민생경제협의체’ 구성에 합의한 것은 협치 복원의 단초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향후 구체적 논의로 발전하지 못하면 일회성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8일 낮 12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오찬을 겸한 회동을 진행했다. 오찬 회동 전후로 여야 대표와 각각 단독 회담도 가졌다.
이번 회동은 정치적 이해득실 측면에서 여야 모두에게 일정한 성과를 안겼다. 거대 여당을 이끄는 정 대표는 야당이 주장하는 ‘의회 독재’ 프레임을 완화하고 ‘대화’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 대표 역시 야당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을 뿐 아니라 이 대통령과 ‘1대1 단독 회동’을 통해 정치적 체급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도 소정의 목적을 달성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한일·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후 장 대표를 비롯한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을 즉각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지지율이 흔들리거나 중요한 정책 처리를 앞두고 제1야당 대표와 만났던 것과 상반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패배하고 국정 지지율이 20%대를 기록하자 협치를 이유로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회동했다. 취임 720일 만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를 의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연정’을 의제로 제1야당 대표와 회동했다. 이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이나 특별한 의제 없이 협치와 국민 통합을 위해 먼저 회동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야가 양보 없이 대립하는 ‘치킨게임’ 국면에서 이 대통령이 활로를 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측이 지지층을 의식해 강 대 강으로 맞서던 상황에서 대통령이 중재자로 나섰다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이날 정 대표와 처음 악수했다. 여야 대표의 ‘악수’는 장 대표 취임 13일 만이자, 정 대표 취임 37일 만이다.
이외에도 9월 유엔(UN)총회와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연이은 외교 현안에 앞서 국내 정치적 긴장을 완화했다는 점도 이 대통령에게는 부수적 성과다.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하며 우리가 경쟁은 하되, 국민 또는 국가 모두의 이익에 관한 것들은 한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현실적으로 들었다”며 “함께 힘을 모으면 좋겠다, 그게 대외 협상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다만 회동의 실질적 성과는 미지수다. 여야가 민생경제협의체 구성이라는 일부 성과를 도출했지만 구체화되지 않을 경우 ‘정치적 이벤트’ 이상의 성과를 거두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세 사람 모두 승자가 된 회동”이라면서도 “이번 회동을 통해 협치로 나아간다거나, 강 대 강 대치가 완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 복원에 공감대는 형성했지만 뚜렷한 합의 성과물도 없다.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법안과 특검 연장 법안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이 대통령이 화답할 가능성은 작다는 평가다. 장 대표 또한 회동 직후 극적으로 이 대통령에 대한 공세 수위를 완화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이르면 10일 표결이 전망되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두고 여야는 다시 강하게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결국 향후 협치의 실효성은 여야가 후속 논의를 어떻게 구체화하느냐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여·야·정이 함께 테이블에 앉아 얘기를 나눈 게 중요한 성과가 아닐까 싶다”며 “민생경제에 대해서도 서로 이견이 있다면 대화하며 논의하겠다는 최종안이 도출됐다. 기간과 정례화 문제는 차후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