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미 양국이 3500억 달러(약 504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협상에서 최종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협상 결과는 단순한 투자 합의 여부를 넘어 한국 경제의 외환 안정성과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는 점에서 ‘운명의 한 주’라는 평가가 나온다.
협상의 핵심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해온 ‘전액 현금 선불 투자’와, 한국 정부가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제시한 ‘장기간 분할 투자와 신용 보증 병행’ 방안 사이에서 어느 정도 절충점을 도출하느냐다. 전문가들은 큰 틀에서 합의 가능성이 높지만, 세부 항목에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27일 경제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방한이 한국 경제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9~3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인하의 핵심 조건인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펀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미는 지난 7월 말, 미국이 한국산 제품 전반에 적용하던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특히 25%의 고율 관세가 부과됐던 대미 수출 1위 품목인 자동차 역시 15%로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문제는 관세 인하의 핵심 전제인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의 세부 구조가 확정되지 않아 관세 인하가 장기간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펀드 규모와 납입 방식, 수익 배분 구조 등을 놓고 양국 입장차가 여전해 협상 타결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액 현금 직접 투자’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직접 투자와 대출·보증을 병행하는 방식을 설득 중이다. 협상이 각론 단계에서 부딪히자 불확실성이 커졌고, 외환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 7월 말 협상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 달러·원 환율은 1390원대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언급한 9월 이후 1410원대로 상승했다. 이후에도 합의 진척이 더디자 환율은 장중 1440원대까지 치솟으며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협상의 최대 쟁점은 투자 규모와 납입 방식이다. 한국 정부는 연간 150억~200억 달러 수준에서 현금 투자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했으며, 나머지 금액은 신용보증 등 간접 투자 형태로 메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각에서는 8년간 매년 250억달러씩 현금 투자, 나머지 1500억 달러를 보증으로 운용하는 절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외환시장 안정과 재정 부담 완화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트럼프 대통령 방한 중 한국이 불확실성 확대를 피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합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정치적 명분이 필요한 만큼 절충점을 찾을 여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아시아 순방길 미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 안에서 기자들과 문답하며 협상에 대해 “타결에 매우 가깝다. 그들이 준비됐다면, 나도 준비됐다”고 언급해 한국 정부의 정치적 결단을 직접 압박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 통상 협상의 핵심 인물인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예고 없이 일본을 전격 방문, 5500억 달러(약 782조 원) 규모의 미·일 대미 투자 합의를 조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과의 선행 합의가 한국에 대한 압박 카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과의 대규모 합의가 먼저 마무리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기반으로 한국에 ‘속도전’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러트닉 장관이 한미 정상회담 전 방한해 한국 측과 관세 협상 막판 조율에 나설 가능성도 있을 것”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단기 외교 이벤트를 넘어 한국 경제의 향방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협상과 투자 패키지 구조가 확정되면 외환시장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산업계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합의가 늦어지면 환율 급등과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협상은 속도보다 질적 성과 확보가 중요하다”며 “외환시장 안정과 재정 여력을 감안한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성과 압박과 한국 정부의 시장 안정 기조가 맞서는 한 주가 될 전망이다. 협상이 원만히 타결되면 외교적 부담은 줄겠지만, 이후에도 품목별 관세·환율 리스크 등 후속 과제가 남을 가능성이 크다.
외교가 관계자는 “이번 협상이 단기 이벤트로 끝나느냐, 장기 리스크 완화의 계기가 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향방이 달라질 것”이라며 “정부로서는 속도보다 질을 챙기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