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직원 316명이 구금됐다가 풀려난 이후 미국을 바라보는 국민적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통상 압박마저 강해지면서 대통령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14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1일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지만 별다른 소득없이 빈손으로 귀국했다.
김 장관은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만나 한국이 약속한 3500억 달러(약 488억 원) 규모 대미 투자 구조와 수익 배분 방식 등을 놓고 논의했다. 김 장관은 이날 귀국장에서 미 측과의 협상에 진전이 있었는지의 여부에 묵묵부답했다. 이에 핵심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국 측은 지난 4일 구금 사태 발생 이후에도 한국의 직접 투자 비중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전체 투자액 가운데 직접 투자를 약 5% 수준으로 두고 나머지를 출자·대출·보증 등으로 채우려 하지만, 미국은 투자금 회수 전 수익을 절반씩 나누고 회수 후에는 90%를 가져가는 방안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를 두고 ‘합리적이지 않다’며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이견은 지난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관세율 15% 적용을 늦추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실은 관세 협상 직후까지 ‘국익 최우선’ 기조를 유지하며 후속 협의에 임했으나, 구금 사태 이후 미국이 기존 25% 관세 재부과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압박을 강화하자 기존 전략 유지 여부를 재검토하는 분위기다. 대미 투자에 대한 국내 여론도 악화된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대통령실의 고심은 이 대통령의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업들 입장에서는 현지 공장을 설립한다는 데 불이익을 받거나 어려워질 텐데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라며 “현재 상태라면 미국 현지 직접 투자는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매우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미 직접 투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미국의 압박 기조가 지속될 경우 우리 정부가 당초 합의한 ‘대미 투자 확대’ 구상에 제동이 걸릴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기업 부담을 감안해 협상 전술을 조정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실제 조지아 구금 사태 이후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며 미국 시장에 뛰어든 국내 기업들은 불확실성에 대비해 투자 전략을 다시 점검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역시 통상 전략과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다. 내부에서는 국민 불안을 방치할 경우 정기국회 운영에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통상 압박이 국내 투자·고용 프로젝트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은 한미 정상 간 직접 소통 확대, 외교·산업 컨트롤타워 간 긴급 협의, 국내 기업 피해 최소화 방안 마련 등 다층적 대응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우리 국익이 최대한 보존되고, 국익이 관철되는 지점에 이르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영점”이라며 “워낙 변수가 많은 협상”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실이 ‘국민 신뢰 회복’과 ‘통상 안정’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짊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지아 구금 사태로 (한미 관계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불안이 크기 때문에 단순히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메시지로는 충분치 않다”며 “한미 간 통상 문제는 곧 안보로도 연결이 되는데, 이 (관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불안감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그간 주로 30대 중도층이 정부의 ‘실용적 외교’를 두고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문제로 중도층에 대한 지지 기반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한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