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서 ‘3박 5일’의 외교 일정을 소화한 이재명 대통령이 귀국과 동시에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등 긴급한 국내 현안과 맞닥뜨렸다. 귀국 직후 각 부처로부터 화재 관련 상황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은 “신속한 시스템 복구와 국민 불편 최소화”를 지시했다.
29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전날(28일) 두 차례의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회의를 주재하고 상황 점검 및 보완책 마련을 논의했다. 특히 오후에는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국민들께서 큰 불편과 불안을 겪고 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그동안 전 정부에서 있었던 사회적 참사와 과거 군사 정부 시절 벌어진 재일 동포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사과한 적 있지만 이번처럼 현 정부 문제를 직접 언급하며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이 대통령이 그만큼 이번 사안을 중대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취약계층 지원, 여권 발급 등 중요 민생 관련 시스템 복원은 밤새워서라도 최대한 신속하게 복구하기 바란다”며 “이번 기회에 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게끔 근본적 대응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측 가능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고, 대비책은 없었다. 대비책이 작동을 안 한 게 아니라 아예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아예 국가 운영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원점에서부터 문제가 없는지 전 시설에 대해 신속하게 근본적인 조사를 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오전에도 강훈식 비서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 주요 참모들과 함께 대전 국정자원 화재 관련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가졌다. 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신속한 시스템 장애 복구 △국민 소통 체계 구축 △국민 불편 최소화 방안 마련 △금융·택배·교통 분야 민관과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 △이중 운영 체계를 비롯한 근본적 보완책 마련 등을 지시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2023년 발생한 전산망 장애 이후에도 이중화 등 장애 복구 조치들이 마련되지 않은 것을 지적하면서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이 대통령은 추석 명절을 코앞에 두고 있는 만큼 국민들이 명절을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방미 일정을 마치고 지난 26일 귀국했다. 귀국 직후 이 대통령은 국정자원 화재와 관련해 전 부처별 행정정보시스템 재난 위기 대응 매뉴얼에 따른 대응 체계와 대국민 서비스 이상 유무, 데이터 손상, 백업 여부 등을 살펴본 바 있다.
야당은 즉각 윤호중 행안부 장관 책임론을 제기하며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7일 정부의 안이한 대비가 불러온 “예견된 재난”이라며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문책을 촉구했다. 국정자원 화재로 정부 업무 시스템 647개 가동이 중단돼 추석을 앞두고 혼란이 우려되는 만큼 복구가 늦춰질수록 국정 부담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난항을 겪고 있는 대미 관세 협상 후속 조치도 풀어야 할 과제다. 미국은 최근 한국 정부에 3500억 달러(약 494조 원) 규모의 직접 투자를 요구하고, 선불 및 투자액 증액까지 언급하는 등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런 미국의 주장에 ‘불가론’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교착 상태가 길어지는 것을 우려하면서도 ‘국익 중심’ 기조를 두고 협상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500억 달러를 우리가 현금으로 낼 수는 없다”며 “객관적으로, 현실적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방미 기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추진한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도 부담이다. 이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가릴 뿐 아니라 자칫 ‘사법부 흔들기’로 비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23~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전날 발표한 이 대통령 직무 평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5%가 현재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전주 대비 5%포인트(p) 하락으로 취임 후 최저치다.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압박과 진실 공방, 내란전담재판부 추진 등 여당 주도 사안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 추출해 전화조사원 인터뷰(CATI)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1.4%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