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중일 간 외교적 긴장이 높아진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4일 이례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대만 문제를 논의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날 통화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 주석이 먼저 연락을 취한 것으로, 중국이 보기 드문 외교적 제스처를 보인 것”이라고 전하며 시 주석의 초점은 대만이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로 대화 방향을 돌렸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 국영매체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통화에서 “대만이 중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전후 국제질서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고 밝혔다. 이어 역사적 맥락을 강조하며 “중·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맞서 나란히 싸웠으며, 이제 그 성과를 함께 지켜야 한다”며 중국의 대만 영유권 주장의 근거는 역사적 조약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대만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매체들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직후 소셜미디어(SNS) 게시글에서 대만이나 최근 중·일 갈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중국과의 관계는 매우 강력하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펜타닐, 대두 등을 논의했다고 전하며, 시 주석의 4월 베이징 방문 요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또 시 주석이 내년 하반기에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경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는 지난 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대만 유사시는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대만 문제에 대한 내정 간섭이라고 비판하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 중·일 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중국은 일본과 동맹인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계속 고수하도록 하는 데 전략적 가치를 두고 있다. 중국은 대만에 대해 필요할 경우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본토와 ‘통일’해야 할 영토이자 ‘핵심 이익’으로 본다.
특히 현재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갖고 있는 대만에 대한 생각을 움직일 수 있는 전략적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WSJ은 베이징에 가까운 소식통들을 인용해 전했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인지에 대해 명시적으로 밝히는 것을 피해 왔다. 대만과 단교 후 미국의 대만 정책인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고 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공세가 크게 강화되자 중국의 대만 침공시 미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내놓은 바 있다.
트럼프는 공개적인 개입 약속이 자신의 협상력을 약화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시 주석이 자신의 임기 동안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주장으로, 개입 여부에 대한 답변을 피해가고 있다. 다만, 중국은 그러한 약속을 인정한 적은 없다.
이번 통화에서 대만이 언급된 점은 지난달 말 한국에서 열린 두 정상의 대면 회담에서는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고 WSJ은 전했다. 시 주석은 제3국에서 이렇게 민감한 사안을 논의하는 데 신중했으며, 두 정상에겐 이미 90분간 논의해야 할 긴급한 현안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방송된 CBS 방송 시사프로그램 ’60분’에서 한국에서 6년 만에 만난 시 주석과의 대면 회담에서 대만 문제가 “주제로 거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이 대만에 군사행동을 할 경우 미군 개입을 명령할지에 대한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 일이 일어나면 알게 될 것이고 그(시진핑 주석)는 그 답을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WSJ은 “대신, 시 주석은 내년 4월 트럼프가 베이징을 방문할 때 직접 대만 문제를 제기한다는 계획”이라며 “중국 지도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며칠간 중국에 머물기를 바라며, 그 자리에서 미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넘어서 대만 독립에 반대하며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도록 압박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이날 통화가 대만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지만, 소식통들은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문제를 꺼냈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매체는 시 주석이 “중국은 평화에 전념하는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스팀슨 센터의 중국 프로그램 책임자인 윤 선은 “중국은 우크라이나 평화 협정을 주시하고 있으며 더 많이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인 워싱턴식 외교 문법을 따르지 않으며, 안보 문제도 철저히 거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가 대만 문제를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중국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중국과 무역 협상을 맺는 것이 미국에 보다 이익이란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통화가 한 시간 동안 지속됐다고 밝히면서 “주요 초점은 우리가 중국과 진행 중인 무역 거래와 그 관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방식에 맞춰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양국은 중국이 희토류 판매를 어떻게 개방할지에 대한 핵심 세부 사항을 여전히 협상 중이라고 통신은 소식통들을 인용해 전했다. 희토류 공급 부족은 자동차, 소비재, 로봇 등 세계 여러 산업에서 생산 차질 위험을 초래해왔다. 관련 논의가 교착 상태인데도 미국은 이미 관세와 국가안보 조치를 일부 완화했다.
이날 미중 정상 간 통화에 대해 일본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산케이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 발언을 이유로 시진핑 정권이 일본에 대한 위압을 강화하고 있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일본 매체 FNN은 다카이치 총리가 25일 오전에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가질 방향으로 최종 조율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 측에서 요청이 있었다고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줘룽타이 대만 행정원장(총리 격)은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발언과 관련, 대만 2300만 국민에게 중국으로의 “복귀”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