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고니아'(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개봉 전 국내에서 이목을 끄는 이유는 원작 때문이다. ‘부고니아’의 원작은 2003년 개봉한 우리나라 영화 ‘지구를 지켜라!'(감독 장준환)로 당대에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독창적이고 이야기와 기발한 연출로 인해 아직도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부고니아’는 외계인의 지구 침공설을 믿는 두 청년이, 대기업 CEO 미셸이 지구를 파괴하려는 외계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몇 가지 주요 설정이 바뀐 점을 제외하면 ‘부고니아’는 ‘지구를 지켜라!’의 독창적인 전개와 주제 의식 등이 잘 반영된 리메이크 영화다. 그러면서도 거장의 연출작답게, ‘B급’ 감성이 완연했던 원작과는 다른 현대적이고 유려한 톤앤매너로 차별화를 이루는 데도 성공했다.
2000년대 이후 약 20여년 간 한국 영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고, 2019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으로 세계 시장에서 ‘K무비’의 입지를 증명해 내며 정점을 찍었다. 그사이 많은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됐는데, ‘부고니아’ 역시 가장 최근 리메이크된 사례로 그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에서 리메이크된 첫 번째 한국 영화는 ‘시월애'(2000)다. 이정재와 전지현이 주연을 맡은 로맨스 영화였던 이 작품은 ‘레이크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2006년 미국에서 제작됐다. 톱스타인 키아누 리브스와 샌드라 블록이 주연을 맡은 ‘레이크 하우스’는 전 세계에서 1억1483만 달러(약 1642억 4159만원)를 벌어들이며 흥행 면에서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다만, ‘레이크 하우스’는 원작의 독창성을 잃은 채 뻔한 할리우드 로맨스를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라는 비판 속에 범작에 머물렀다.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작품 중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다. ‘올드보이’는 2013년 스파이크 리 감독이 연출하고 조시 브롤린,, 엘리자베스 올슨 등 유명 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혹평 속에 ‘가장 실패한 리메이크 사례’로 남았다. 로튼토마토에서 토마토 지수 39%(부정적 평가가 우세한 수준)를 기록 중인 미국판 ‘올드보이’에 대해서는 “원작의 자극적인 장면을 재탕하기 위해 만든 영화” 등의 혹평이 자자하다. 원작 ‘올드보이’는 해외에서 언제나 대표적인 한국 영화 걸작으로 손꼽히기에 리메이크 작품에 대한 불호도는 더욱 극명하게 대비돼 나타났다.
그 외에도 할리우드에서는 ‘엽기적인 그녀'(2001)가 ‘마이 쎄시 걸'(My Sassy Girl)(2008), ‘거울 속으로'(2003)가 ‘미러'(Mirrors)(2008) ‘장화, 홍련'(2003)이 ‘안나와 알렉스: 두 자매 이야기'(2009) 등으로 리메이크됐지만, 원작에 못 미치는 완성도 혹은 흥행 실패 등 아쉬운 결과를 낳으며 끝났다.
‘부고니아’는 이 같은 ‘리메이크의 저주’를 끊을 수 있을까. 앞선 리메이크 영화들과 ‘부고니아’의 차별점이 있다면 원작의 배급사가 직접 할리우드 리메이크 버전의 기획개발을 주도한 점일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먼저 리메이크를 시도했다기보다는, 배급사가 직접 원작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화를 추진한 것. ‘지구를 지켜라!’의 배급사였던 CJ ENM은 지난 2018년부터 약 7년간 이 영화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추진했고, 시나리오부터 감독, 배우, 제작사 패키징 등 기획개발을 주도한 끝에 영화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원작과 깊은 연관성을 자랑하는 ‘부고니아’는 미국에서 지난달 24일부터 선개봉했으며, 같은 달 31일부터 확대 개봉에 들어갔다. 제8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기도 했던 ‘부고니아’는 로튼 토마토에서 토마토 지수 89%로 좋은 평을 받고 있으며, 2026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정조준한 영화로서 후보 지명이 유력하게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