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에 또다시 제동이 걸렸지만 한국 수출기업이 직면한 불확실성은 당분간 해소되기 힘들 전망이다.
트럼프 정부는 법원이 위법이라고 판결한 근거인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외에도 관세 부과를 정당화할 다양한 법적 수단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다. 실제 트럼프 정부는 이번 판결에 대한 상고를 준비 중이다.
아울러 미국 경제 전문가들은 IEEPA법이 아닌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상호 관세가 제동이 걸릴 경우 법의 저촉을 피할 수 있는 품목별 관세 비중을 더욱 확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어 반도체 등 국내 수출기업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10월 14일까지 관세 효력 유지…트럼프 정부 상고 방침
2일 업계에 따르면 CAFC의 상호관세 무표 판결의 효력 발생 시기는 내달 14일이다. 즉 그전까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유지되는 셈이다.
CAFC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IEEPA가 국가 비상사태 대응 수단이라는 점은 인정했지만 과세 권한은 의회에 속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부과한 상호관세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다만 법원은 10월 중순까지 당분간 관세 효력을 유지한 채 소송을 이어갈 수 있도록 허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법원 상고를 예고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관세가 철회되면 미국 외교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위험한 외교적 굴욕”을 경고했다.
국내 수출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대법원의 판결 결과와 상관없이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만약 대법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줄 경우 미국의 관세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대법원에서 항소법원 판결이 인용될 경우 한국 등 상호 관세 협상을 맺은 국가들은 그간 미국이 관세로 거둬들인 수천억 달러의 세금 환급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법원 판결에 불복할 가능성이 큰 만큼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관세 부과 의지를 꺾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품목별 관세 해당 안 돼…무역법 122조·301조도 변수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대안은 반도체 등에 부과할 수 있는 품목별 관세다. 품목별 관세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만큼 이번 판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품목 관세 설정 및 변경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며 “이는 상호관세가 법정에서 무효 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의 보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자동차 관세율을 15%로 낮추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도 25%의 관세율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반도체, 바이오 등에 대해 최혜국 대우 등을 명문화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 또한 무산됐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상호 관세 부과에 제동이 걸리면서 품목별 관세를 무기로 삼아 일방적인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고도 보고 있다.
WSJ는 “트럼프 행정부는 향후 품목별 관세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며 “반도체, 의약품 등에 대한 관세도 몇 달 내 새로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가 대통령에게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응해 특정 국가에 일시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인 무역법 122조와 301조(슈퍼301조)도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기업 불확실성 커져…”상황 예단할 수 없어, 발표 나와야 대응 가능”
트럼프 정부가 각 국가에 관세 부과를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한국 수출 기업들은 당분간 불확실성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 부과에 제동이 걸릴 경우 품목별 관세 등을 기업들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 중 하나가 압박을 최대치로 올린 후 대미 투자 등 원하는 것을 얻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7월 말 한미 양국이 상호 관세율에 합의한 이후 1~2주 이내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품목별 관세는 한미 정상회담이 마무리됐지만 아직도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이에 반도체, 자동차, 의약품 등 한국 기업들은 불확실한 상황이 지속되는 만큼 대안을 준비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품목별 관세율이) 발표가 난 후에야 우리도 대응 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것뿐”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