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직원들은 삼성 오스틴부터 쌓아온 노하우를 가지고 홈(home)경기를 하고 있고 경쟁사는 어웨이(away·원정) 경기를 하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 사장은 지난달 초 서울대 강연 자리에서 미국 현지 직원과 나눈 대화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는 미국의 삼성전자(005930) 직원들이 25년 가까이 자리 잡은 오스틴 공장에 대해 ‘미국 회사’라는 정체성과 인식을 갖고 있으며, 새로 짓고 있는 테일러 공장 역시 ‘홈’에 지어진다고 생각한다는 해석이다.
미국에 처음 공장을 짓는 대만 TSMC가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과 달리 삼성전자의 미국 신규 공장 건설은 순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 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 반도체는 ‘홈’ 인력 확보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현지 경영 노하우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미국 대학교들에 선제적인 투자를 지속·확대하는 중이다. 지역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홈경기’를 하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0일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캠퍼스(UIUC) 그레인저 공과대학에 연간 100만달러(약 13억원)를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또 9월에만 텍사스 A&M대 인재 육성 프로그램에 100만달러, 미국 텍사스대(UT) 370만달러(약 49억원)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반도체 산업에 관심 있는 공대생들을 지원하고 인재 채용 기회를 늘리기 위한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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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 산업 협회(SIA)가 발표한 ‘미국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노동 시장 격차 및 해결’ 보고서 (SIA 홈페이지 갈무리) |
삼성전자가 이같이 대학에 투자하는 이유는 수요에 비해 한참 모자라는 수준 높은 반도체 인력을 조기에 육성하고 인재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미국 내 ‘반도체 엔지니어 가뭄 현상’은 계속해서 심화하고 있다. 미국에 공장을 운영 중이거나 새롭게 짓고 있는 삼성전자, 인텔, TSMC 등 주요 반도체 업체 간 인재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지난 7월 ‘미국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노동시장 격차 및 해결 보고서’를 통해 2030년 반도체 산업의 신규 일자리가 11만4800개 늘 것으로 봤다. 다만 6만7000개의 일자리가 미충원되고 이 가운데 엔지니어는 2만7300명이나 부족할 것으로 예측했다.
같은 달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있는 코트라(KOTR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실리콘밸리 무역관에서 조 스코쿠나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아메리카 회장도 “팹(공장)을 건설하거나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테크니션 확보가 중요하다”며 인재 확보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오스틴과 테일러 공장 내 인력 확보를 위한 노력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1998년 삼성 반도체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지었다. 지난해 11월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 위해 170억달러(약 22조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하고 올 상반기 착공에 들어갔다.
내년 말부터 테일러 공장에서 4나노(㎚·1㎚=10억분의 1m) 제품을 생산할 예정인 만큼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채용 설명회도 진행하며 인재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리쿠르팅(recruiting)팀은 가을 학기 시작을 앞두고 미국 대학교를 방문했다.
지난 9월 6일(현지시간) 텍사스 A&M대와 UT 오스틴을 시작으로 27일까지 조지아 테크, 일리노이-어바나 샴페인 등 16개 캠퍼스를 순회하며 ‘대학 오리엔테이션 채용 프로그램(CORP)’과 ‘여름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할 학생을 모집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미국 대학교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선제적인 인재 확보를 위한 것”으로 “(이렇게 뽑힌 인원들은) 오스틴 공장은 물론 내년 말 가동을 앞둔 테일러 공장의 주요 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