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돌발 변수’ 없이 기존 통상협상 합의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세부 쟁점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앞서 양국은 지난달 대(對)미 수출품에 대한 관세율 15%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데 합의했으나, 이번 회담에서도 구체적인 투자 사업은 언급되지는 않았다. 농산물 등 비관세 분야 역시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2시간 반가량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회담에서 두 정상은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등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워싱턴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합의문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서로 이야기가 잘 된 회담”이라고 평가했다.
기존 합의 유지 재확인…가시화한 세부항목은 없어
이날 양측은 큰 틀에서 지난달 31일 합의했던 통상협상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회담을 마친 뒤 진행한 ‘포고문 서명식’에서 무역 협상과 관련해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일부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우리는 입장을 고수했다”며 “그들은 합의한 대로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회담에서 기존 합의보다 진전된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당시 품목별 관세의 경우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관세도 15%로 확정했다. 추후 품목별 관세 부과가 예고된 반도체와 의약품의 경우 다른 나라와 비교해 최혜 대우를 받기로 했다.
그 대신 한국은 3500억 달러(약 490조 원) 규모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다. 또 1000억 달러(약 140조 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도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강 대변인은 “정상 간 구체적인 세목을 갖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앞으로) ‘우리는 무역 협상을 할 것이고, 너무 분위기가 좋았다’. 그 정도 이야기에서 서로 끝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양국 정부는 3500억 달러 투자 펀드의 구체적인 투자 항목 등을 두고 실무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양국은 조선 (분야) 최대 1500억 달러를 포함해 에너지, 핵심 광물,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인공지능(AI), 퀀텀컴퓨팅 등에 패키지를 활용하기로 했고, (법적) 구속력 없는 MOU(양해각서)를 하기로 합의했다”며 “앞으로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금융위원회,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이 참여하는 실무 TF를 구성해 세부적인 실행 방안을 미국 측과 계속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농·축·수산물 뇌관 여전…러트닉 ‘돌발 발언’도
그간 한미 양국 간 쟁점이었던 농·축·수산물 문제 역시 이날 회담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강 대변인은 ‘협상 주요 의제로 예상된 농산물 추가 개방 여부는 미국 측에서 요청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아예 그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답했다.
농·축·수산물 관련 논의가 당장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향후 다시 쟁점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전히 미국 측이 농축산물 추가 개방에 대한 압박 의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한미 정상회담 후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해 “미국에서는 시장 개방을 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 농민과 제조업자, 혁신가를 위해 시장을 계속해서 개척해 나갈 것”이라며 “한국의 대미 투자를 더욱 확대했으면 좋겠고, 한국 시장에 대한 (미국의) 접근도 늘려 나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또다시 ‘알래스카 LNG’ 언급한 트럼프…향후 실무협상 진통 전망
이와 더불어 지난달 관세협상 당시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참여 압박도 재개됐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에서 한국과 석유 관련 협력을 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훨씬 더 많은 석유, 가스, 석탄,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알래스카에서 ‘합작 투자(조인트 벤처)’를 진행할 것”이며 “일본도 강력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숙원사업으로, 미국은 사업 성공을 위해 세계 주요 LNG 수요국인 일본, 한국, 대만 등에 개발 사업 참여를 압박해 왔다. 이번 언급에 따라 한국은 가까운 시일 내 참여 여부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처럼 각 분야에서 협상이 진행됨에 따라 일부 사안에서는 협의 기간이 늘어지거나, 진행 과정에서 진통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과거와 같이 하나가 끝났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협상의 과정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며 “워낙 새로운 이슈가 제기될 수 있어서, 저희로서는 협상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