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유전체 분석 기업 노보진이 최근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면서 국내 유전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저가 공세와 국내 규제 우회 전략을 앞세운 노보진이 국내 유전체 산업을 위협하는 ‘황소개구리’라는 경고까지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노보진은 지난 6월 국내에 자회사 노보진코리아를 설립했다. 노보진코리아는 국내 병원과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진핵생물 mRNA 시퀀싱 서비스에 대해 최대 20%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노보진코리아는 노보진의 한국 지사로, 유전체(Genome)와 멀티오믹스 분석 서비스 를 국내에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노보진이 국내에서 유전자 샘플을 수집한 뒤 이를 중국 본사로 보내 분석하는 과정에서 유전체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 유전체 기업 임원은 “노보진코리아는 국내 영업·마케팅을 담당하고, 유전체 분석은 중국 본사에서 한다”며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유전체 정보가 중국으로 그대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전체란 한 생명체가 가진 모든 유전정보(DNA)의 총합으로, 민감 정보에 해당한다. 유전체 분석을 통해 개인 식별뿐 아니라 질병 위험, 약물 반응 등 건강 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보안과 규제 측면에서 민감하게 다뤄져야 한다.
특히 노보진코리아는 국내 최대 건강검진기관인 한국건강관리협회(건협) 건물에 입주해 있어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신동직 한국바이오협회 한국유전체기업협의회 부회장은 “노보진코리아가 입주한 건물이 아주 우연하게도 건협 건물인데. 건협은 검진자들에게 NGS 서비스를 한다고 홍보해 왔다”며 “건협이 노보진과 협력하게 된다면 정말 많은 데이터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중국 유전체 분석 기업의 정보 유출 사례는 전례가 있다. 로이터는 2021년 중국 BGI가 산전 유전자 검사 키트를 통해 전 세계 800만 명 이상의 임신부 유전체 데이터를 수집했고, 이 키트가 중국 인민해방군과 공동 개발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로이터는 BGI가 국가 안보 목적으로 해당 유전체 데이터를 활용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했다.

업계는 국외 유전정보 이전이 현행법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기업은 의료기관을 통한 위탁 분석만 허용되고, 소비자 직접 의뢰(DTC) 유전자 검사도 피부·비만 등 일부 항목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반면 외국 기업은 자회사를 통한 우회적 방식으로 직접 소비자와 접촉하고, 유전정보를 수집해 해외에서 분석할 수 있는 구조다. 사실상 ‘유전정보 역수출’이 합법처럼 운영되는 것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내 유전체 기업들은 의료기관을 통한 위탁 분석만 허용되고, DTC 유전자 검사도 피부·비만 등 일부 항목에 제한된다”며 “반면 해외 기업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직접 소비자와 접촉하고 분석까지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 역차별이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여러 악조건 속 국내 유전체 기업들은 점점 생존의 갈림길에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미흡한 대응 역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 한 유전체 기업 대표는 “정부는 여전히 유전체 산업을 규제 대상으로만 보고, 그마저도 담당자를 열심히 설득해 놓으면 1~2년 단위로 변경돼 기존 논의가 무산되길 반복하고 있다”며 “단순 규제를 풀어달라는 주장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이 산업을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지 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