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을 완화하는 대가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와 석유를 1000억 달러(약 146조 원) 규모로 수입하기로 약속했으나,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참여에는 수익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미국 안보전문매체 내셔널인터레스트가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관세 협상과 1000억 달러 에너지 수입 약속
한국과 미국은 수 개 월간 협상 끝에 지난 13일 공동 팩트시트를 발표했다. 한국은 미국의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대가로 미국 조선업에 1500억 달러,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분야에 20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미국과의 무역 흑자를 줄이는 방안으로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수입 계획이 포함됐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지난 7월 협상 타결 직후 “1000억 달러 에너지 구매는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중동에서 미국 공급원으로 전환하는 것이어서 우리 경제가 필요한 에너지 양과 일치해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카타르와 오만에서 수입하는 LNG 계약이 만료되면서, 한국 LNG 수입량의 30% 이상을 미국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카타르와 오만은 각각 한국 LNG 수입량의 21%와 10%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가스공사는 2028년부터 10년간 연간 330만 톤의 LNG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참여는 ‘신중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의회 연설에서 “우리 행정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각각 수조 달러를 투자하며 우리의 파트너가 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미국 측 계획은 노스슬로프에서 알래스카만 항구까지 직경 42인치(약 107cm) 파이프라인을 440억 달러(약 64조 원)에 건설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초기 회의에서 협력 의사를 보였으나, 투자나 LNG 구매 약속을 통한 공식 참여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지난 8월 포스코는 파이프라인이 완공되면 연간 100만 톤의 LNG를 구매하고 파이프라인 건설에 필요한 철강 일부를 공급하겠다는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포스코는 “이는 사전 합의”라며 “공식 약속을 체결하기 전에 추가 내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정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종 합의 발표 당시 “한국은 상업성이 없어 당분간 참여를 자제할 것”이라며 “참여하더라도 주로 조달 측면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이 합작투자에 전면 참여를 약속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기후공약과 화석연료 확대 딜레마
미국산 LNG 수입 확대 약속은 한국의 화석연료 감축 노력과 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LNG는 이미 감소 추세로, 2035년까지 한국 전력 구성의 9.3%로 떨어질 전망이다.
한국은 지난해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3배, 2050년까지 원자력 에너지를 3배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브라질에서 열린 COP30에서는 180여 개국과 함께 처음으로 신규 석탄 발전소 건설 중단과 기존 발전소 단계 폐지를 공식 선언했다.
COP30 직후 한국 정부는 2035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기후 운동 진영에서는 이를 불충분하다고 비판했고, 산업계에서는 과도하다고 반발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미국산 화석연료 수입 확대가 기후 목표 달성에 상당한 난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다만 미국산 LNG는 중동 지역과 말라카 해협 병목 현상을 피하는 운송 경로를 제공해 가격 변동성이 적고 공급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도 있다. 또 미국과의 동맹 신뢰성에 우려가 제기되는 시기에 경제 통합을 심화하고 에너지 인프라를 통해 동맹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