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첫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지난달 타결된 관세 협상으로 양국 간 분위기는 좋지만, 이번 회담을 기점으로 ‘동맹 현대화’를 기조로 한 미국의 안보 청구서가 제시되며 한미의 힘겨운 협상 ‘2 라운드’가 전개될 것으로 12일 전망된다.
국방 예산과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증액,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를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넓히는 방안이 미국의 청구서의 주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만남에서 확인될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한미의 안보 협상의 분위기도 정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국방비 30조 이상 증액·주한미군 역할 변화…미국 ‘안보 청구서’의 두 축
이번 정상회담에서 제기될 미국의 ‘안보 청구서’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국방비와 방위비분담금 인상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8%로 인상하고,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을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이상 증액할 것을 한국에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그간 거론돼 온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GDP 대비 5%보다는 인상 폭은 작지만, 여전히 막대한 예산을 늘려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된다. 현재 한국의 국방비는 GDP 대비 2.6%(65조 원)인데, 이를 3.8%에 맞추면 95조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보다 30조 원가량의 예산과 사용처를 추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방위비분담금 역시 10억 달러가 늘어나면 내년 방위비분담금인 약 1조 5000억 원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국방비 인상의 쟁점은 인상의 기한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토는 오는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5%에 맞추는 것으로 미국과 합의했다. 한국의 인상 비율이 적어진 대신 미국은 인상 기한을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 혹은 이재명 정부의 임기 내로 나토에 비해 적게 잡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주한미군 역할 확장…한국 거점으로 인도·태평양 군사 분쟁에 대응
두 번째 축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요구다. 이는 주한미군의 임무를 한반도 방위에 국한하지 않고, 인도·태평양 전역으로 확장하는 개념이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군사력이 한 곳에 고정되면 실용성이 떨어진다”며 주한미군 활동 반경을 한반도에서 더 넓힐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의 구상은 주한미군과 한반도를 ‘대중 견제’의 거점으로 삼겠다는데 중점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 전략적 유연성이 도입되면 대북 억지에 주력해 왔던 주한미군의 성격과 배치가 중국, 러시아를 비롯해 인도·태평양 지역 전반의 현안에 대응할 수 있도록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으로 주한미군이 운영될 경우, 현재의 대북 억지 기능 중 상당 부분이 역내 파견에 맞게 변화가 불가피하다. 기동성을 높이고, 한반도 외의 다른 현장에 맞게 병력의 구성도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대응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주한미군은 숫자보다 역량이 중요하다”라며 전력을 첨단화하는 방식으로 한반도 안보 공백을 불식할 방침임을 밝혔다.
한국은 향후 협상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한반도 안보 공백 우려에 대한 해결책을 미국과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은 국방비 인상 문제와 연계돼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나 첨단 전략자산의 전개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아울러 미국이 동맹의 현대화가 오로지 ‘중국 견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화법을 구사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국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이유가 ‘중국 견제’라고 명시하는 등 강경한 표현을 고집한다면 외교적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가장 어렵지만 제일 핵심이 돼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절충안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작권 전환 시기도 협상 대상…한미 ‘불협화음’ 예상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도 동맹 현대화 틀 안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2014년 이후 ‘조건에 기초한 전환’ 방식으로 변경됐지만, 역내 안보 환경과 군사 능력 조건이 엄격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는 전작권 전환을 임기 내에 달성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정부가 전작권의 ‘조기 전환’ 내지는 이에 준하는 수준의 권한을 확보하는 것을 미국에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미국의 입장이 호의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협상 초기 이 문제로 한미 간 불협화음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브런슨 사령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전작권 전환 문제와 관련해 “지름길을 택하면 준비태세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라고 말해 미국이 전작권의 빠른 전환을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군 안팎에서는 전반적으로 한미 안보 협상을 통해 한국의 재정적·군사적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협상을 미국 주도로만 끌려가선 곤란하다”라며 “미국의 각종 요구에 우리도 대응해 첨단 전력 확충 등 우리의 군사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