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단기적으로 안전자산 엔화의 강세를 유발했지만 주식, 채권, 엔화의 트리플 약세 위험은 여전하다.
21일 해양의 날로 일본 금융시장이 휴장하는 가운데 24시간 거래되는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 대비 0.7%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이 전날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에 실패하면서 21일 오전 8시 24분 기준 상승폭은 0.2%로 축소됐다.
엔화가 단기적으로 강세를 보인 것은 참의원 선거 이후 일본의 정국 불안 때문으로 안전자산 엔화의 수요가 생긴 영향이다.
시드니 내셔널 오스트레일리아 은행의 통화 전략가인 로드리고 카트릴은 “불확실성은 적어도 초기에는 엔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 자체는 엔화를 비롯한 일본 자산에 좋은 소식은 아니고 엔화 강세도 약해질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자민당 정권은 중의원(하원)에 이어 참의원에서도 과반 의석을 잃었다. 자민당 정권이 양원에서 모두 과반을 지키지 못한 것은 1955년 창당 이후 처음이다.
이번 참의원 선거의 핵심 쟁점은 물가였고 여당의 2만엔 현금 지급 공약은 유권자들을 설득하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이 소비세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운 야권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자민당을 이끄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일단 연임 의지를 보이며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거론했다.
이에 야당 일부의 지지를 얻어 국정 운영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민중민주당(DPP)으로,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완화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자민당이 야당의 감세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큰 폭의 타협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소수 여당의 국정 운영력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통보한 관세 시한 8월 1일이 지나고 자민당 내부에서 이시바 총리의 책임론이 거세져 이시바 총리가 사임할 가능성도 있다. 이시바 총리가 물러나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 커지며 주식, 채권, 엔화가 모두 하락할 위험이 있다.
국가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국가신용이 하락할 경우, 일본의 채권·주식·통화가 모두 매도세에 직면해 일본 은행권의 달러 자금 조달 비용도 상승할 수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감세 요구가 강해질 경우, 감세 규모와 기간에 따라 일본의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시바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상이다. 다카이치는 지난 5월부터 ‘식료품 소비세 제로’를 주장하며 소비세 인하에 소극적인 이시바 총리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으로 유명하다. 또 다카이치는 일본은행의 통화완화 재개를 요구한 바 있다.
일본 미즈호 증권의 수석 데스크 전략가인 오모리 쇼키는 “미국 정부와의 무역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자민당이 지도부 교체를 강행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당장은 공격적 재정부양이 쉽지 않다. 오모리 전략가는 “의미 있는 추가경정예산이 나온다면 아무리 빨라도 가을에서야 논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