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미국의 상호관세 발효일을 앞두고 협상 테이블에 수십조 원 규모의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2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5일(현지시간) 뉴욕 하워드 러트닉 장관의 자택에서 미국 조선업 현지 투자 및 미국 선박 건조·유지·보수 수요를 한국에서 우선 처리·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젝트 이름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에 조선(Shipbuilding)을 더한 MASGA(마스가)로 알려졌다.
협상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 수백억 달러, 한화로 수십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구체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우리 정부는 향후 협상 과정에서 구체적 협상 금액이 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고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 기관 클라크슨 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세계 조선업 수주 점유율은 중국 69.2%, 한국 18.1%, 일본은 4.6%다. 미국은 1% 미만이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정책 기조로 가진 만큼 해양 안보, 물류 확보에는 한국의 지원이 필수적인 셈이다.
한국의 조선업 협업 재원에 미국도 상당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해양 지배력 복원’ 행정명령을 통해 조선업을 ‘국가 안보 및 경제 안보의 핵심’으로 규정하며 미국 조선업 자립 지원과 함께 동맹 협력을 정책 수단으로 강조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동맹 협력을 통해 미국 민간·군용 선박을 확충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조선업 역량을 키워 자립하겠다는 것이다.
수요 충족 정책 지원으로는 선수금환급보증(RG) 지원 강화가 주요 정책 수단이다.
RG는 선박 건조 후 발주처(선주) 인도가 계약 기간 내 이뤄지지 않을 때, 발주처에 선수금을 돌려주기 위한 보증 상품이다.
RG는 대규모 자금이 장기간 투입되는 조선업 수주에 필수적이다. 미국이 협업을 통해 한국 조선사에 발주를 낼 때 RG 발급 확대가 뒤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소형 컨테이너선(피더선)도 1척당 400억~500억 원이 들어간다. 조선업계에서는 통상 40%를 선수금을 지불하는데, 선박 인도가 늦어지면 160억~200억 원의 선수금을 금융기관이 발주처에 제공하게 된다.
민간 금융 입장에서 RG는 선박 건조에 장시간이 필요하고 변수가 많아 예상이 어려운데 큰 비용지출 위험도 있어 리스크가 큰 상품이다.
이에 과거에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주로 RG 발급을 해왔지만, 최근에는 정부의 ‘RG 특례 보증 보험’ 도입으로 민간 금융기관도 대형 조선사를 중심으로 발급에 나서고 있다.
‘RG 특례 보증 보험’은 무역보험공사가 선박 인도 지연 시 금융사가 지급해야 하는 비용 일부를 보전해 주는 ‘보증의 보증'(복 보증) 상품이다. 금융기관이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를 줄여 RG 발급을 활성화하는 취지다.
2025년 특례 보증 지원 규모는 6000억 원 규모다. 특례 보증에 대한 정부 출연금이 확대되면 민간 금융기관의 RG 발급도 늘어 미국의 발주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RG 발급 재원을 직접 투입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미국의 중장기적 목표인 ‘미국 내 조선 역량 재건’은 인력 양성, 세제 혜택, 투자 인센티브 등 전방위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미국 조선업 몰락이 장기화하며 복원에 필요한 인프라가 없다시피 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조선 공학자를 학부부터 박사까지 양성하는 곳은 미시간 대학교가 유일하다고 알려졌으며, 선박 건조 실무를 맡을 노동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반면 한국은 인적 자원뿐 아니라 조선소 운영, 수주 사업관리 경험이 풍부하다.
게다가 한국은 미국 내 실무 인력 양성을 최소화하면서도 생산성을 늘리는 데 핵심인 ‘인공지능(AI) 용접 로봇’, 스마트 도크 등 조선소 자동화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AI 분야에서는 최첨단을 달리는 만큼 한국이 보유 중인 기술을 고도화하는 시너지 효과도 날 수 있다.
이미 한화그룹은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미국 상선, 군함 물량 수주에 나서고 있다. HD현대, 삼성중공업, 한진중공업 등도 미국 투자 확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다. 필리조선소는 미국 주요 중견 조선사로 분류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설비, 생산 능력 기준으로 중형에 불과하다.
한화그룹은 인수 당시 1억 달러(약 1400억 원)를 지불했고 인수 후에도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추가 투자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조선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지원하는 정책 금융은 해외 투자자금 대출(한국수출입은행), 해외투자보험(무역보험공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미국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이들 정책금융상품에 정부 재원이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경쟁국인 일본은 지분 투자, 대출, 보증을 합쳐 총 5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형 투자 패키지 약속을 해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각각 15%로 내리는 데 성공했다. 이어 유럽연합(EU)도 6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을 바탕으로 미국과 무역 합의를 이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