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3500억 달러(약 485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압박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정부가 대응 카드로 ‘한미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을 역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지난 7월 말 관세협상 타결 당시와 달리 투자 펀드 내 현금 직접 출자 비중을 높이라고 요구하자, 외환시장 충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지난 2021년 종료된 한미 통화스와프의 부활을 요구한 것으로, 향후 협상 테이블의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14일 대통령실·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협상 세부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무제한 한미 통화스와프 개설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통화스와프는 비상시 자국 화폐를 상대국 중앙은행에 맡기고 미리 정한 환율로 상대국 통화를 빌려오는 계약으로, 외환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정부가 통화스와프 카드를 꺼내 든 것은 대미 투자 펀드 조성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외환시장의 급격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앞서 양국은 지난 7월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기로 한 25%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세부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펀드 내 현금 직접 투자 비중을 높이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요구에 따를 경우 거액의 달러가 국내에서 빠져나가며 달러·원 환율이 급등할 우려가 있다.
이에 정부는 2021년 종료된 한미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 협정을 부활시켜 외환시장 불안을 잠재울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씨티는 한국이 약속한 투자를 이행할 경우 2028년까지 연간 1170억 달러가 필요하며, 연간 환전 수요가 최대 96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이 통화스와프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제안이 미국의 현금 투자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협상용 카드’라는 분석도 나온다. 통화스와프 체결 요구를 지렛대로 활용해 펀드 내 현금 출자 비중을 최대한 낮추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통화스와프 추진 여부에 대한 질문에 “지금은 한미 양측이 서로 조건을 변경해가며 협상 중이어서 구체적으로 양측 입장이 어떤지 뚜렷하게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기획재정부도 “현재 대미 투자 협상 과정에서 외환시장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협의 중”이라며 “다만 한미 간 협의 중인 사항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