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개그맨’ 전유성이 폐기흉으로 투병 중 별세했다. 향년 76세.
김학래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회장은 25일 밤 뉴스1에 “전유성 님이 이날 오후 9시 5분께 별세하셨다”며 “26일 서울아산병원에 빈소가 차려질 예정이며, 장례는 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진다”라고 밝혔다.
전유성은 최근 폐기흉 증세가 악화돼 전북대학교병원에 입원했으며, 이날 위독한 상태인 것이 알려지며 안타까움을 줬다.
또한 앞서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에 측은 전유성의 상태를 알리는 공지문을 내고 병문안이 어려운 코미디언 후배들을 대상으로 영상 편지를 요청해 이를 전달했다. 전유성은 투병 중에도 문병을 온 후배들에게 유머를 잃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유성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엄영수(개명 전 엄용수), 김미화 등 후배 개그맨들은 물론 누리꾼들의 초모도 이어졌다.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및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애도를 표하는 많은 이들의 반응이 올라왔다. 누리꾼들은 “위독하다 들었는데 바로 부고 소식이 들리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전유성을 웃겨라’ 재밌게 봤었는데 슬프다”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 “1년 전 ‘짠한 형’에서 봤었는데 안타깝다” “몇 달 전 ‘꼰대희’ 채널에 나왔을 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안타까운 소식이다” “대한민국 개그의 새로운 틀을 만드신 분이라 생각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1949년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태어난 전유성은 1969년 TBC 방송작가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우리나라 1세대 개그맨인 그는 ‘최초의 개그맨’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개그맨’이라는 명칭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전유성을 소개할 때 쓰기 시작한 말로, 이후 방송사 공채 코미디언을 부르는 말로 널리 사용돼 일반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전유성은 개그계의 아이디어 뱅크로 후배 개그맨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개그우먼 김미화와 함께 초석을 다지는 데 공헌한 KBS 2TV ‘개그콘서트’는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행을 주도했다.
전유성은 생전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2001년부터 운영했던 ‘코미디 시장’이라는 코미디 극단은 안상태, 김대범, 황현희, 박휘순, 신봉선, 김민경 등 유명 희극인들을 배출했으며, 이문세, 주병진, 김현식, 팽현숙 등도 전유성에 의해 발굴됐다.
더불어 경북 청도군에 전국 최초의 개그 전용 극장인 ‘철가방 극장’을 설립했고, 복날 희생된 견공들을 위로하기 위한 ‘개나 소나 콘서트’를 기획하는 등 기발하고 실험적인 도전을 다수 선보이기도 했다.
개그맨 전유성의 이름을 알린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1980년대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1990년대 ‘개그콘서트’ ‘좋은 친구들’ ‘웃으며 삽시다’ 등이 있다. 특히 ‘좋은 친구들’의 ‘전유성을 웃겨라’ 코너는 큰 인기를 끌었다.
생전 독특한 언행 탓에 ‘기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전유성은 다독가이자 여러 저서를 남긴 작가이기도 하다.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1995) ‘PC통신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1995) ‘남의 문화유산답사기 1′(1997)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1999) ‘나이먹은 전유성도 하는 일본어'(2000)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1′(2007)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2008) 등이 대표적이다.
전유성은 가수 진미령과 지난 1993년 재혼해 약 20년간 부부로 살았으나, 2011년 헤어졌다. 두 사람은 결혼식은 올렸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사실혼 관계였으며 이는 결별 이후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알려졌다. 첫째 부인과의 슬하에 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