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최신 인공지능(AI) 가속기인 GB300에 삼성전자(005930)의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탑재하기로 확정했다. 삼성전자가 칠전팔기 끝에 엔비디아 공급망에 공식 진입하면서, 글로벌 HBM 시장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9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서신을 보내 GB300 시스템에 삼성전자의 HBM3E 12단을 탑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젠슨 황 CEO가 직접 삼성전자의 HBM3E 퀄 테스트(품질 검사) 통과 소식과 함께 HBM3E 주문 의사를 통보한 셈이다. 양사는 구체적인 공급 물량과 가격, 일정 등을 놓고 막바지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공급망’에 진입한 것은 1년7개월여 만이다. 황 CEO가 지난해 3월 미국 반도체 콘퍼런스 GTC 2024에서 삼성전자 HBM3E 12단 제품에 ‘젠슨이 승인했다(Jensen Approved)’는 서명을 남기면서 삼성전자 납품설이 시장을 달궜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급기야 황 CEO가 올해 1월 CES2025에서 ‘HBM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이재용 회장의 ‘독한 삼성’ 주문이 나온 것도 비슷한 시기로,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 재설계한 샘플을 다시 전달했다.

물론 주류가 6세대인 HBM4로 이동하는 시점인 만큼, 삼성전자의 GB300향(向) HBM3E 12단 물량 자체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내내 애를 먹었던 ‘기술적 한계’를 돌파했다는 의미는 작지 않다. 현재 퀄 테스트가 진행 중인 HBM4의 통과 소식도 앞당겨질 수 있다.
업계에선 ‘이재용 세일즈’가 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은 대법원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직후인 8월 대부분을 미국에 체류하며 비즈니스 미팅을 소화했다. 그는 현지에서 황 CEO와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15일 1차 미국 출장을 마친 뒤 귀국한 자리에서 “내년도 사업을 준비하고 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이 회장은 황 CEO와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 장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용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성전자 내부 AX(인공지능 전환)와 사업 확대에 쓰일 것으로 관측된다.
노태문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직무대행 사장은 지난달 독일 베를린 IFA2025 기자간담회에서 “2030년까지 업무 영역의 90%에 AI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픈AI와 삼성전자가 공동 구축하는 포항 AI 데이터센터 서버에 이 GPU가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