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가 2026년 세계 상품무역 성장률 전망을 0.5%로 대폭 낮추면서, 여름 내내 이어진 상대적 평온이 끝나고 실제 ‘관세 충격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4일(현지시각) “여름 내내 잠잠했던 무역전선이 겨울을 앞두고 다시 요동칠 조짐”이라며, 기업들이 무역·경제 불확실성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8개월간 이어진 ‘가짜 전쟁(Phoney War)’과 닮은 양상이다. 미국 관세 대부분은 8월부터 본격 적용됐지만, 셧다운으로 경제지표 발표가 멈춰 충격이 지연되고 있다.
관세 충격의 지연된 영향
미국 관세가 대부분 8월부터 본격 시행됐지만, 정부 데이터는 아직 지속적인 영향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다. 더욱이 미국 정부 셧다운으로 경제 데이터 발표가 중단되자 상황 파악이 어려워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4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보고서’에서 2025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3.2%로 예측한다고 밝혔다. 이는 7월 전망치 3.0%보다 0.2%포인트 상향 조정된 수치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가 예상보다 완화된 영향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WTO는 2026년 전망을 크게 어둡게 내다봤다. 오콘조-이웰라 WTO 사무총장은 “내년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며 “올해 예상보다 높은 회복력은 위기를 앞두고 수입을 앞당겨 늘린 데 크게 기인했으며, 실제 타격은 이제 2026년에 본격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업 불확실성 지수 급등
전미독립기업연맹(NFIB)의 소규모 기업 불확실성 지수는 7포인트 급등해 100을 기록했으며, 이는 51년 역사상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소규모 기업 낙관 지수는 9월에 2.0포인트 하락한 98.8을 기록해 3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공급망 혼란을 문제로 지적한 기업 비중이 8월 54%에서 9월 64%로 10%포인트 증가했으며, 인플레이션을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기업 비중도 8월 11%에서 14%로 3%포인트 늘었다. 가격 인상을 계획하는 기업 비중은 8월 26%에서 31%로 5%포인트 증가했다.
금융시장에서는 VIX 변동성 지수가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크 윌슨 수석 전략가는 “미중 무역 긴장이 11월 초까지 완화되지 않으면 S&P 500지수가 10-15% 조정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와 무역전쟁 재점화
중국은 지난 9일 희토류 수출 통제를 대폭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홀뮴, 어븀, 툴륨, 유로퓸, 이터븀 등 5개 원소를 새로 추가해 총 12개 희토류 원소에 수출 통제를 실시한다.
특히 외국 군사용도로의 희토류 수출을 금지한다고 명시해 미국 국방산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희토류는 F-35 전투기,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프레데터 드론, 토마호크 미사일 등 핵심 무기체계에 필수적인 소재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60%, 정제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으며, 미국은 희토류 수입의 약 7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주말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며 무역갈등이 재점화됐다.
인공지능 수요와 선제적 물량 확보가 2025년 무역 회복의 핵심 요인
2025년 상반기 세계 상품무역량이 전년 동기 대비 4.9% 증가한 배경에는 두 가지 주요 요인이 있다. 첫째는 미국 기업들이 관세 인상에 앞서 재고를 앞당겨 확보한 것이고, 둘째는 인공지능(AI) 관련 상품 무역의 급증이다.
AI 관련 상품인 반도체, 서버, 통신장비 등의 무역액이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해 3000억 달러(약 427조 원)를 넘어섰다. 전체 세계 무역에서 AI 관련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지만, 전체 무역 성장의 42%를 차지했다.
WTO는 이런 앞당겨 수입 증가와 AI 붐이 2026년에는 반전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쌓아둔 재고를 소진하고 높은 관세율과 무역정책 불확실성으로 수입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정부 셧다운이 가중하는 불확실성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이 지난 1일부터 시작돼 2주째 지속되고 있어 경제 상황 파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노동부와 상무부가 주요 경제지표 발표를 중단한 상황에서, 투자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은 민간 조사에 의존하고 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정부 셧다운이 매주 약 150억 달러(약 21조 3500억 원)의 경제 손실을 야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9월 고용보고서 발표가 연기되면서 연방준비제도의 10월 29일 금리 결정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26년 세계 무역 전망
WTO는 2025년 세계 상품무역 성장률 전망을 8월 0.9%에서 2.4%로 대폭 상향 조정했지만, 2026년은 1.8%에서 0.5%로 큰 폭 하향 조정했다. 이는 올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과가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며, 실제 관세 충격은 내년에 본격화할 것임을 시사한다.
개발도상국 간 무역은 상반기에 8% 성장을 기록하며 전체 세계 무역 성장률 6%를 웃돌았다. 특히 중국을 제외한 개발도상국 간 무역은 9% 성장해 무역 다변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지난 몇 달간의 ‘가짜 무역전쟁’이 끝나고 실제 충격파가 2026년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기업들과 투자자들은 더욱 높은 불확실성과 변동성에 대비해야 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