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자사 인공지능(AI) 칩 제조에서 삼성전자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텍사스 오스틴의 테슬라 본사와 삼성의 새 테일러 공장 간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는 한편,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1위인 대만 TSMC가 사실상 독점해 온 테슬라 최신 칩 공급망에 삼성전자가 본격 진입, ‘이원화 위탁생산 전략’의 핵심축으로 떠올랐다. 업계의 이목이 쏠리는 대목이다.
22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머스크 CEO는 이날 테슬라 3분기 실적 발표 후 열린 전화 회의에서 투자자들에게 현 세대 AI 칩인 ‘AI5’의 제조를 삼성전자가 TSMC와 분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전에 (AI5를) TSMC만 고려한다고 내가 공개적으로 했던 일부 발언과 관련해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며 “우리는 실제로 AI5에 대해 초기에는 TSMC와 삼성전자 두 곳 모두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AI 칩 수요 폭증으로 TSMC의 생산 능력이 제한된 가운데, 테슬라가 공급망 안정화, 위험 분산 및 생산 수율 보완을 위해 양사 병행 전략을 택한 것으로 분석한다. 특히 삼성의 3나노 GAA(Gate-All-Around) 공정 안정화 수준이 테슬라의 기대를 충족시킨 것으로 보인다.
‘AI4’ 이어 ‘AI6’까지…주력 파트너로 부상한 삼성
테슬라는 자사의 핵심 경쟁력인 자율주행차 기능과 최근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로봇 제품군을 구동하는 데 이 AI 칩을 사용한다. 이번에 공동 생산되는 AI5 칩은 ‘D1/Dojo’ 계열의 후속 모델이며, 내부 코드명은 ‘아틀라스-2(Atlas-2)’다. 엔비디아 H200 수준의 연산 성능을 목표로 2026년 상반기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삼성전자는 3나노 GAA 공정(SF3)을, TSMC는 3나노(N3E) 공정을 맡아 일부 물량을 병행 생산한다. 테슬라는 이 칩을 AI 컴퓨팅 프로세서 시장의 선두주자인 엔비디아 하드웨어와 함께 사용한다.
이전 세대인 AI4 칩은 삼성전자가 5나노 LPP 공정으로 오스틴 공장에서 생산했다.
앞서 지난 7월, 머스크는 차세대 AI 칩인 ‘AI6’의 생산을 삼성전자에 맡길 것이라고 밝혀 블룸버그 뉴스의 보도를 확인했다. AI6는 2027년경 삼성의 2나노 공정(SF2)을 통해 단독 생산될 예정이다. 삼성은 AI4(생산), AI5(공동생산)에 이어 AI6(단독생산) 물량까지 확보하며 테슬라 AI 칩의 주력 생산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당시(7월) 양사가 체결한 계약은 165억 달러(약 23조 원) 규모의 ‘다년간 멀티노드 생산 계약’으로, 최소 5년 이상 공급을 골자로 한다. 특히 테슬라가 생산 설비투자(CAPEX)의 약 30%를 선지불하고, 삼성전자는 AI 반도체용 특화 전용 라인을 구축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40km 거리 ‘텍사스 동맹’…TSMC 독점 구도 균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업계에서 TSMC에 이어 ‘격차가 큰 2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테슬라 본사가 위치한 텍사스주 오스틴 인근의 테일러시 생산 허브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TSMC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2022년 착공해 2025년 하반기 본격 가동되는 삼성 테일러 공장은 테슬라 오스틴 기가팩토리에서 직선거리 약 40km에 불과해 공급망 연결에 최적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TSMC가 애리조나 공장에서 일부 물량을 공급할 예정이나, 미국 내 실제 운송 및 소통 효율 면에서는 삼성이 유리하다는 평가다.
이번 결정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AI 시장으로 확장을 본격화하는 전환점이라는 평가다. 시장도 즉각 반응해 (23일 오전 8시 18분 GMT+9 기준) 삼성전자 주가는 1.83% 상승했으며, 관련 기업인 테슬라는 0.82%, TSMC는 1.35%, 엔비디아는 0.49%의 주가 변동을 보였다. 테슬라는 주주총회에서 내부 반도체 설계팀 인력을 25% 확충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TSMC 측은 “고객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일환이며 공급 영향은 제한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6년 이후 AI6 칩이 상용화되면 삼성전자가 TSMC의 자동차용 고성능 컴퓨팅(HPC) 칩 파운드리 점유율을 최대 30%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한 테슬라가 검토 중인 미국 내 자체 패키징 라인 구축 과정에서 삼성의 ‘아이큐브(I-Cube)’ 등 첨단 패키징 기술이 도입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계약은 단순한 파트너 교체를 넘어, 테슬라의 AI 기술 내재화, 삼성의 미국 내 공급망 주도권 강화, TSMC의 독점 구조 완화라는 3가지 뜻을 동시에 갖는 세계 파운드리 산업의 재편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