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중고 가격이 세계 곳곳에서 급락하면서 친환경 차량 전환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배터리 수명을 알 수 없어 중고 전기차 시장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차량 공유와 렌터카 업계는 물론 개인 소유주들까지 큰 손실을 입고 있다.
레스트 오브 월드는 최근 전기차 감가상각 속도가 가솔린차보다 2배 이상 빠르며, 특히 초기 구매자들이 산 구형 모델 가치 하락이 더욱 심하다고 보도했다.
인도·미국 사례가 보여준 중고차 가격 위기
중고 전기차를 팔 때 가격 급락 문제는 인도 전기차 전문 차량공유 업체 블루스마트(BluSmart)가 무너지면서 분명히 드러났다. 뉴델리에 본사를 둔 블루스마트는 지난 4월 재무 부정 혐의로 운영을 멈췄다. 인도 증권거래위원회(SEBI) 조사에서 회사 공동 창업자인 아놀 싱 자기와 푸니트 싱 자기 형제가 전기차 구매용 대출금 26억 2000만 루피(약 429억 원)를 고급 부동산 같은 개인 용도로 빼돌린 사실이 밝혀졌다.
블루스마트가 가진 수천 대 전기차는 원래 대당 1만 2000달러(약 1700만 원) 이상 값어치가 있었으나, 회사가 파산한 뒤 중고시장에 쏟아지면서 대당 3000달러(약 430만 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75%나 가치가 내려간 것이다.
미국 시장도 다르지 않다. 2023년에 산 테슬라 모델Y는 2년 만에 가치가 42% 내려간 반면, 같은 해 나온 포드 F-150 트럭은 20%만 떨어졌다. 시애틀에 있는 중고 전기차 평가 업체 리커런트(Recurrent)의 앤드루 가버슨 성장연구 책임자는 “가솔린 자동차는 100년 동안 쌓인 주행거리와 정비 기록, 엔진 부품이 얼마나 갈지를 바탕으로 값을 매긴다”며 “전기차는 움직이는 부품이 적고, 차 가격의 상당 부분이 배터리 하나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한 연구를 보면 3년 된 전기차는 값의 50% 이상을 잃은 반면, 가솔린차는 39%만 내려갔다. 다른 연구에서는 미국 내 전기차가 3~5년 사이 값의 60%까지 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 차량 절반 이하 수준이다.
차량 보유 업체들, 생존 위기로 내몰려
차량 공유와 렌터카 업계가 이 문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본사를 둔 렌터카 업체 허츠(Hertz)는 2021년 테슬라 차량 10만 대를 샀으나, 2024년 29억 달러(약 4조1700억 원) 손실을 기록했다. 허츠가 지난 2월 공개한 실적 자료를 보면 이 손실은 주로 전기차 값 급락 때문이었다.
인공지능(AI) 기반 차량 조사·쇼핑 플랫폼 카바이AI(Carvai.ai)의 잭 칼슨 최고경영자는 “차량 보유 업체들은 총 소유 비용을 소수점까지 계산하고 수천 대를 되팔아야 해서 남은 값 위험을 가장 크게 느낀다”며 “개인 구매자들은 배터리 상태와 충전 문제를 주로 걱정하지만, 차량 보유 업체들은 되팔 때 가격을 걱정한다”고 말했다.
허츠는 지난해 말 한 달에 차량 한 대당 평균 530달러(약 76만 원) 이상 손해를 봤다. 높은 처음 비용과 가파른 보험료, 긴 수리와 복구 시간이 이유였다고 전기차 전문 매체 인사이드이브이스(InsideEVs)는 전했다. 허츠는 결국 가진 전기차 3만 대를 팔았다. 처음에 4만 달러(약 5700만 원) 이상 주고 산 테슬라 차량들이 2만 달러(약 2800만 원)도 안 되는 값에 팔렸다. 지난 8일 기준 허츠 웹사이트에는 모델Y가 2만 7000달러(약 3800만 원)에 올라와 있었다. 신차 모델Y는 얼마 전까지 미국에서 4만 5000달러(약 6400만 원)에 팔렸으나, 테슬라가 이달 초 4만 달러 안쪽 저렴한 버전을 내놨다.
인도 아르타 벤처펀드(Artha Venture Fund)의 아니루드 다마니 전무이사는 “개인 소비자가 중고 전기차를 팔 때 가격은 단지 불편한 문제지만, 차량 보유 업체는 생존 문제”라며 “차량은 그들한테 생활용품이 아니라 돈 버는 자산이다. 앞으로 값을 예측할 수 없으면 돈 버는 차량 보유 업체도 차를 바꿔야 할 때가 오면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마니 전무이사는 인도에서 가족이 쓰는 차는 1년에 조금만 달리지만, 인도 차량 보유 업체 차량은 주행거리가 3~4배에 이르러 중고차를 팔 때 값이 더 빨리 무너진다고 덧붙였다. 우버(Uber)는 블루스마트가 가진 중고 전기차 5000대를 사려다 포기했고, 현지 경쟁사인 에바라 캡스(Evara Cabs)도 배터리와 보증 걱정 때문에 손대지 않았다. 블루스마트가 뉴델리와 벵갈루루에서 급하게 헐값에 판 사례는 전기차가 얼마나 빨리 쓸모없어질 수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줬다.
브랜드와 지역마다 격차 뚜렷
재미있는 점은 테슬라가 여전히 가장 나은 경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폴란드에 있는 차량 기록 정보 제공업체 오토DNA의 마리우스 사울라 최고경영자는 “테슬라는 여러 해 경험과 브랜드를 쌓아서 중고차를 팔 때 값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며 “중국 신생 업체인 BYD, 니오(Nio), 샤오펑(XPeng)은 중고를 팔 때 상대적으로 낮은 값을 보인다”고 말했다.
사울라 최고경영자는 “프리미엄 브랜드는 되팔 때 내연기관 차량과 전기차 모두 시장 브랜드보다 꾸준히 높은 값을 지킨다”며 “중국 자동차 만드는 회사 체리(Chery) 아래 브랜드인 오모다(Omoda) 같은 완전히 새로운 중국 브랜드가 5년 뒤 중고시장에서 어떤 값에 팔릴지 아무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감가상각 위기는 지역마다도 다르게 나타난다. 차량 거래 업체 카에지(CarEdge)의 저스틴 피셔 자동차 전문가는 “중국, 노르웨이, 코스타리카처럼 소비자들이 전기차로 바꾸는 데 열려 있는 시장에서는 높은 수요가 중고차 가격을 받쳐준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수천 대 차량을 평가해온 칼 브라우어는 “북미의 넓은 고속도로와 먼 이동 거리는 중고 전기차에 힘든 환경”이라며 “유럽은 도시가 모여 있고 출퇴근 거리가 짧아 미국이나 캐나다보다 중고 전기차 시장이 더 안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거리 말고도 날씨 민감성과 충전 시간이 문제로 작용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브라우어는 “전기차는 온도가 적당한 도심에서 짧은 거리를 다니기에 알맞지만, 먼 거리를 가거나 날씨가 매우 덥거나 추울 때는 기존 차만큼 효과적이지 않다”며 “배터리가 크고 주행거리가 긴 전기차도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차량보다 에너지를 채우는 데 더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캐나다 여러 브랜드 전기차 딜러 이브이넷(EVNet)의 조니 T. 베켓 영업 부사장은 “소비자한테 좋은 정책과 넓게 깔린 공공 빠른 충전망이 소비자 믿음을 높인다”며 “더 큰 수요와 안정된 공급이 북미보다 되팔 때 값을 안정시킨다”고 말했다.
배터리 데이터와 새 장사 방식으로 회복 기대
그러나 희망적인 신호도 나타나고 있다. 배터리 기술이 예상보다 튼튼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커런트 연구를 보면 배터리는 1년에 1~2%만 성능이 떨어지며, 2016년 이후 만든 차량 가운데 1%만 배터리를 바꿔야 했다. 이는 그 전 전기차 13%와 비교된다. 요즘 바꾼 경우 대부분도 보증으로 처리한다.
가버슨 책임자는 “데이터가 사람들한테 중고 전기차 배터리를 믿게 만들고 있다”며 “믿음이 커지면 되팔 때 값도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렇게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지표를 바탕으로 인증 중고 전기차 프로그램과 배터리 상태 보고서가 늘어나면서 정보를 보고 결정하기 쉬워졌다. 대서양 캐나다 전기차협회를 함께 만든 베켓 부사장은 “예전에는 새 전기차 모델이 계속 나와 1~2년만 지나도 구형이 되는 바람에 중고차 값이 뚝 떨어졌다”며 “지금은 차 만드는 회사들이 자주 새 모델을 내기보다는 한 모델을 오래 팔고 있어서 중고차 값이 덜 떨어진다”고 말했다.
차량 보유 업체들에게는 배터리를 따로 빌려 쓰는 방식이 생존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차를 살 때 배터리까지 사는 게 아니라, 차는 사고 배터리는 한 달에 얼마씩 내고 빌려 쓰는 것이다. 다마니 전무이사는 “이렇게 하면 차량 보유 업체들이 배터리가 언제 고장 날지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한 달에 내야 할 돈도 정해져 있어 계산하기 쉽다”며 “배터리 때문에 차 가격이 떨어질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맥킨지가 지난 4월 낸 보고서를 보면 유럽인 5명 가운데 1명, 미국 소비자 10명 가운데 1명만 전기차 구매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버, 볼트(Bolt), 리프트(Lyft) 같은 차량공유 업체들은 완전히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약속하며 세계 곳곳에서 큰 투자를 하고 있다. 차를 사려고 빌린 돈을 다 갚기도 전에 차 가격이 뚝 떨어질 수 있는데도 말이다.
베켓 부사장은 “2026년은 공급과 수요 모두에서 업계와 시장이 다시 맞추는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