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서 경제 문제로 유권자 신뢰를 급격히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NBC 뉴스가 지난 3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등록 유권자의 63%가 트럼프의 경제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평가했으며, 민주당이 의회 장악 선호도에서 공화당을 8%포인트 앞서는 등 정치 판도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경제 성과 부정 평가 63%…”2010년 오바마와 비슷”
NBC 뉴스가 지난 3일 공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등록 유권자의 63%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운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답했다. 트럼프의 전체 지지율은 43%였으며, 경제 기대 충족도는 34%에 그쳤다. 중산층 보호는 33%, 인플레이션 대응에서는 30%만이 기대를 충족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조사 결과는 2010년 8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받았던 평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당시 공화당은 몇 달 뒤 중간선거에서 ‘레드 웨이브(붉은 파도)’를 일으키며 의회를 장악했다.
민주당은 “다음 선거 후 누가 의회를 장악하길 원하는가”라는 질문에서 50% 대 42%로 공화당을 앞섰다. 이는 2018년 중간선거 이후 NBC 뉴스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이 기록한 최대 격차다. 다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정부 셧다운이 끝난 뒤 선거 막판에는 정치 환경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셧다운 6주째…4000만 명 식품 지원 중단 위기
경제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 셧다운이 6주째 이어지면서 민생 위기가 깊어졌다. 11월 식품보조지원프로그램(SNAP) 혜택이 중단되자 4000만 명 이상이 영향을 받게 됐다.
뉴욕주 버펄로 지역에 사는 한나(26세)는 NBC 뉴스 인터뷰에서 “10살 때부터 1형 당뇨병을 앓고 있어 매달 300달러(약 43만 원)의 식품 지원이 생명줄”이라며 “이 혜택을 받지 못하면 혈당 조절이 불가능하고, 최악의 경우 발가락이나 팔다리를 잃거나 실명할 수도 있다”고 호소했다.
정부 셧다운 탓에 연방 공무원들은 무급 상태가 됐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푸드뱅크와 실업 수당에 기댔다. 셧다운 책임 소재를 묻는 질문에는 트럼프와 공화당을 지목한 응답이 52%로, 민주당(42%)보다 높았다. 다만 민주당 책임 비율도 과거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일 연방 판사는 행정부에 비상 기금을 활용해 “가능한 한 빨리” SNAP 수혜자들에게 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다른 연방 판사도 별도 소송에서 행정부가 혜택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백악관은 해당 기금을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법원의 추가 해석을 구하고 있다.
마러라고 파티·백악관 리모델링…트럼프 “다른 곳에 집중”
식품 지원 혜택이 끊길 위기에 처한 시점에 트럼프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위대한 개츠비’ 테마의 화려한 할로윈 파티를 열었다. 파티 테마는 “작은 파티 정도론 아무도 죽지 않는다”였다. 앞서 그는 소셜미디어에 백악관 링컨 욕실의 고급 리모델링 사진을 수십 장 올렸다.
지난주 트럼프는 아시아 순방에 나서 관세 관련 발표에 집중했다. 그 전에는 민간 기부금 3억 달러(약 4314억 원)를 들여 백악관 동쪽 건물을 철거하고 볼룸을 짓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이 공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트럼프를 지지했던 베티 스레터(63세)는 딸 한나를 돌보는 최근 은퇴자로, NBC 뉴스에 “트럼프가 마음 깊은 곳에선 식량 불안 같은 문제로 나라를 돕고 싶어 한다고 믿는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그는 해외에 나가 있으며 백악관을 허물고 있다. 민간 자금으로 진행된다지만, 그 돈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게 너무 이기적으로 보인다”며 “2024년 트럼프에게 투표한 것을 후회한다”고 덧붙였다. 베티는 현재 “트럼프가 줄이려는 혜택을 저지할 민주당원이 백악관에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JD 밴스 부통령은 지난달 기자가 SNAP 혜택 중단과 행정부의 재원 마련 노력에 대해 묻자, SNAP 문제를 직접 답하지 않고 민주당을 비난했다. 밴스는 “불행한 현실은, 그리고 우리가 항공 산업에서 보기 시작한 것처럼, SNAP 혜택으로 어려운 방식을 알게 될 것”이라며 “미국 국민은 이미 고통받고 있고, 고통은 훨씬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경제 우위 1%p로 급감…”아무도 트럼프에게 말 못해”
이번 조사에서 공화당의 전통 강점이었던 경제 문제 우위가 사실상 사라졌다. “경제 문제 처리” 능력에서 공화당은 민주당보다 단 1%포인트 앞서는 데 그쳤다. 이는 2018년 이후 공화당이 유지해온 15~20%포인트 우위가 무너진 것이다.
한 공화당 전략가는 익명을 전제로 “아무도 대통령에게 경제에서 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최근 백악관에 우려를 전했다고 NBC 뉴스에 밝혔다.
등록 유권자의 83%가 ‘생활비’를 가장 중요하거나 매우 중요한 단일 문제로 꼽았다. 이는 ‘이민과 국경 안보'(58%)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민주당 전략가 척 로차는 “지금 물가가 오르고 있다. 관세 탓에 공과금과 생활 전반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민주당 후보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문제에 대해 실제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간다면, 유리할 것“이라면서 ‘트럼프가 물가를 낮추겠다고 약속했지만 실현되지 않아 후회하는 남성 유권자가 많다”고 말했다.
조지아주 공화당 하원의원인 마저리 테일러 그린은 지난주 ‘팀 딜런 쇼’에서 “물가는 전혀 내리지 않았다”며 “고용 시장은 극도로 어렵다.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최근 몇 주 동안 대통령과 자신의 당을 비판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는 민주당 주장에 동의하며 건강보험법(ACA) 세금 공제 연장을 정부 재개방 협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린 의원은 NBC 뉴스에 “가족들이 한 달에 1500달러(약 215만 원)에서 2000달러(약 287만 원)를 쓰고 있고 보험료 인상을 앞둔 시점에서, 이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지난달 초 밝혔다.
백악관 “세금 감면·관세 효과 나타날 것”
백악관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임금 상승과 주식시장 호황 같은 일부 지표는 경제에 밝은 측면이 있다는 증거”라며 “트럼프의 대규모 세금 감면과 관세가 완전한 효과를 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 구매력과 소비력이 오르고 있고, 구체적 가격으로 보면 휘발유와 달걀 같은 품목이 내렸다”며 “트럼프의 미국 투자 추진은 앞으로 미국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큰 이익을 안겨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하이오주 공화당 상원의원인 버니 모레노는 NBC 뉴스 인터뷰에서 “실질 임금이 계속 오르는 것을 보면 경제 상태는 매우 강하다”며 “근로 가정 세금감면법이 매우 잘 작동했다. 분명한 것은 민주당이 경제가 잘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은 11월 21일까지 현재 지출 수준을 연장하는 ‘계속 결의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연말 만료 예정인 건강보험법(ACA) 세금 공제 연장을 포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공제가 연장되지 않으면 수백만 명이 보험료 급등을 겪게 된다. 공화당은 의료보험 싸움은 정부가 재개방한 뒤 따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베티 스레터는 트럼프에게 직접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말로만 하지 말고 실천하라. 진정한 국민의 일꾼으로서 나라를 구하라”며 “자기 재산을 실제로 남을 돕는 데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말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