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의 해고 규모가 110만 건을 넘어서며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에 육박하는 고용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 인력감축 전문 컨설팅업체 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가 6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미국 기업들이 발표한 해고는 110만 건으로 팬데믹 불황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10월 한 달 동안 발표된 해고가 15만3000건으로 전월 대비 183% 급증하며 2003년 이후 최악의 10월로 기록됐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175% 증가한 수치다. 아마존과 UPS(유나이티드 파슬 서비스), 타깃 등 주요 대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기술, 소매, 서비스, 물류업종을 중심으로 해고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연말 관행 깨진 10월 대량 해고
10월 해고 급증세는 통상 연말 해고를 꺼리던 기업들의 관행마저 무너뜨렸다. 존 챌린저 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 최고경영자(CEO)는 “10월 해고 발표로 새로운 영역에 진입했다”며 “UPS의 4만8000명, 아마존의 1만4000명 등은 2020년 이후, 그 이전으로는 2009년 불황 이후 처음 보는 대규모 해고”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밝혔다.
아마존은 최근 1만4000명의 기업 부문 직원 해고를 발표했다. 앤디 재시 아마존 CEO는 인공지능(AI) 투자를 위한 비용 확보와 조직 간소화를 해고 이유로 들었다. UPS는 올해 4만8000명을 감축했는데, 이 중 3만4000명은 93개 시설 폐쇄에 따른 운영 인력이고 1만4000명은 기업 부문 직원이다. 타깃은 본사 직원 1000명을 해고하고 800개 채용 공고를 취소했다.
기술업종의 타격이 가장 심각하다. 올해 들어 기술기업들이 발표한 해고는 14만100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기업들은 수요 둔화와 AI 도입에 따른 인력 재편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AI보다 경기 둔화가 주범
기업들은 해고의 가장 큰 이유로 비용 절감과 AI를 지목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I가 직접적 원인이라기보다 경제 불확실성과 소비 둔화가 더 큰 배경이라고 분석한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매튜 비드웰 경영학 교수는 “AI가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초기 징후는 있지만, 이번 해고에서 그 영향이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고 CBS 뉴스에 말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그레이스 즈웨머 부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들은 10월 해고가 가속화됐음을 보여준다”며 “연방정부 직원의 실업수당 청구가 10월 18일 종료 주에 1만 건을 넘어선 것은 정부 셧다운이 타격을 주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민간 급여처리업체 ADP가 이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0월 민간 부문 고용은 4만2000명 증가에 그쳤다. 이는 9월 2만9000명 감소에서 반등했지만, 정보기술 부문은 1만7000개, 전문서비스 부문은 1만5000개 일자리가 줄었다.
연준 “고용시장 악화” 긴급 대응
미연방준비제도(연준)는 노동시장 악화 조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준은 지난달 29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 연 3.75~4.0%로 낮췄다. 이는 올해 두 번째 금리 인하로, 9월에 이어 같은 폭으로 내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금리 인하 결정 후 기자회견에서 “상당수 기업이 채용을 하지 않거나 실제로 해고를 단행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를 매우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고용에 대한 하방 위험이 최근 몇 달간 증가했다”며 노동시장 보호를 위한 선제적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공식 경제지표 발표가 중단되면서 정확한 경제 상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0월 1일 시작된 정부 셧다운으로 노동부의 월간 고용보고서 발표가 멈췄다. 9월과 10월 고용보고서 모두 발표되지 못했다. 가장 최근 실업률은 8월 기준 4.3%로,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지만 7월 4.2%보다 상승한 수치다.
챌린저 CEO는 “올해 초반까지는 기업들이 신규 채용도 하지 않고 해고도 하지 않는 관망 상태를 유지했다”며 “당시 노동시장은 압박을 받았지만, 실업률이 낮게 유지되며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이번 대량 해고는 경제 둔화로 그동안 억눌려 있던 구조조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신호”라고 경고했다.
장기 실업자, 즉 6개월 이상 구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수가 8월 기준 약 200만 명으로 2022년 이후 최고 수준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해고로 이 수치가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