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옥과 나무를 표현한 섬세함, 또 한편으로는 거친 바위를 표현한 거침없는 붓터치가 조화를 정말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걸작을 직접 볼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아요.”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스미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 개막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서 만난 마르타 바리(메릴랜드)씨는 겸재 정선의 대표 작품이자 한국의 국보인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진경'(True-view) 산수화의 정수로 비 온 뒤 인왕산 정취를 담은 한국의 국보이며 지금도 서울에 가면 작품에 묘사된 인왕산을 볼 수 있다고 기자가 설명하자 “꼭 한 번 한국에 가보고 싶다”라며 활짝 웃었다.
이전 전시의 정식 명칭은 ‘한국의 보물 :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특별전으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컬렉션 중 대표작을 모아 선보인다.
당초 지난 8일 개막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운영중단) 여파로 계획보다 1주일 늦게 전시를 시작했다. 국립아시아미술관, 시카고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했고, 삼성은 이번 특별전의 대표 후원사이다. 이번 워싱턴DC 전시에만 특별히 출품되는 리움미술관 소장품도 함께 선보인다.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컬렉션 2만 3000여 점 중 미국 관람객을 위해 엄선한 국보와 보물 20여 점을 포함한 200여 점의 작품이 미술관 갤러리 23, 24, 28호실에서 살아 숨쉬 듯 예술성을 뽐내며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열린 역대 한국 미술 전시 중 가장 큰 규모이며, 고대 불교 조각과 도자기부터 회화, 목가구, 20세기 근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1500년에 걸친 역사를 아우른다.

10개의 주제별 공간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근대 이전과 20세기 작품을 아울러 한국 미술의 깊이와 다양성을 조명한다.
전시의 도입부와 마무리는 각종 서책과 진귀한 기물을 화려하게 채색한 책가도에서 영감을 받아 수집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호기심의 방(cabinets of curiosity)을 연상시키는 이 공간은 과거 수장가들이 소장품을 어떻게 수집하고 감상하며 전시했는지를 보여준다. 전시품 중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희귀 서적과 문방구, 골동품 등을 묘사한 19세기 책가도 병풍도 포함되어 있다.
그 외 전시 공간에서는 조선시대 성리학적 이상을 추구한 사대부의 가치관과 화려한 조선의 왕실 문화, 불교미술의 유구한 전통, 현대 회화의 대담한 실험정신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사의 주요 주제를 조명한다.
조선시대 대표 회화가인 정선(1676-1759), 김홍도(1745-1806), 신윤복(1758-1814 추정)과 근대 변관식(1899-1976), 현대 이상범(1897-1972), 박생광(1904-1985), 이응노(1904-1989), 김환기(1913-1975)등 대표작들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국립아시아미술관장인 체이스 F. 로빈슨(Chase F. Robinson)은 “이번 특별전은 미국 관람객에게 한국 미술의 풍부함과 깊이를 선보이는 드문 기회로, 삼국시대 불교 조각부터 조선시대 선비의 사랑방 가구, 그리고 대담한 20세기 회화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친 혁신과 창의성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이번 워싱턴DC 이번 전시는 내년 2월 1일까지 열릴 예정이며, 2026년 3월 7일부터 7월 5일까지 시카고박물관으로 이어진다. 두 기관은 각기 다른 큐레이션을 통해 이건희 컬렉션의 공통된 작품과 차별화된 선별작을 함께 선보인다.

전시와 연계해, 한국 미술 수집을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도 열린다. 심포지엄은 내년 1월 22일과 23일 개최될 예정으로, 학술 행사에는 미국, 영국, 한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해 서화 수장(收藏)의 역사, 미술 시장의 형성, 국가 소장품의 구축, 그리고 해외에서의 한국 미술 수집 등 다양한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미국의 관람객들이 이번 전시에서 그 기원을 찾아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한국 문화의 힘과 예술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얻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 전시는 한국의 문화와 미술이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역사적 다양성과 혼성성을 포용하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 믿는다”라고 했다.
정윤 삼성전자 북미총괄장은 “이건희 회장 유족의 아낌없는 기증은 한국의 문화유산을 전 세계와 나누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