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가 과연 전문직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미국에서 다시 불붙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회계를 연방 정부가 지정하는 ‘전문직’ 목록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회계업계 전반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3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공인회계사협회(AICPA)의 마크 코지엘 회장은 최근 열린 업계 콘퍼런스에서 “회계는 의심의 여지 없는 전문직”이라며 “청렴성과 엄격한 기준 지속적인 교육이라는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례적으로 강한 표현이 나온 배경에는 미 교육부의 정책 변화가 있다고 FT는 전했다.
FT에 따르면 미 교육부는 최근 회계를 ‘지정 전문직’ 목록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목록에서 빠질 경우 회계 관련 대학원 과정은 연방 정부가 보증하는 고액 학자금 대출 대상에서 제외된다. 회계업계는 이 조치가 단순한 제도 변경을 넘어 회계사의 사회적 지위 자체를 흔드는 결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전문직 지위 약화 논란 확산
이번 논란은 회계업계에 특히 민감한 시점에 불거졌다. 미국 여러 주에서는 젊은 인재 유입을 늘리기 위해 공인회계사(CPA) 시험 응시 요건을 완화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회계를 단순 기능직이 아니라 전문직으로 격상시키려 했던 수십 년간의 정책 기조를 되돌리는 움직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동시에 자유시장주의 성향의 정치권과 정책 입안자들은 회계사 면허 제도를 경쟁을 제한하는 장벽으로 보고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회계사뿐 아니라 간호사 건축사 엔지니어 등 다른 전문직 단체들도 같은 이유로 지정 목록에서 제외됐다.
미국공인회계사협회는 대형 회계법인과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을 중심으로 교육부에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회계가 공공의 신뢰를 기반으로 자본시장과 기업 경영을 떠받치는 핵심 직업이라는 논리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공인회계사협회 자체는 공인회계사 자격 취득 과정에서 요구되던 사실상의 대학원 1년 과정 요건을 폐지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협회는 이에 대해 “회계 교육을 다른 전문직 교육과 일관된 기준으로 다뤄야 하며 이번 조치는 대학 회계학과의 존립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자유시장 규제 완화 압박도 변수
미 교육부는 이번 조치가 회계의 가치에 대한 판단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의회의 지시에 따라 학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 조정이라는 설명이다. 학자금 대출 접근성을 제한하면 대학들이 등록금을 낮출 수밖에 없고 이는 교육비 부담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이같은 접근은 회계사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업계의 목표와도 일부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더 큰 변수는 주(州) 차원의 규제 개편이다. 플로리다주에서는 회계위원회를 포함해 미용사 이발사 해충 방제사 수의사 건축 검사관 등의 면허 관리 기구를 해체하고 주정부 직속으로 통합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춰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다.
지지자들은 플로리다가 규제 완화 실험의 시험장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회계가 자본시장 신뢰와 직결된 직업이라는 점에서 단순 서비스업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 규제가 사라지면 책임은 어디로
회계가 전문직 지위를 잃을 경우 공익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다른 형태의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 회계사가 은퇴 자금이나 세무를 잘못 처리할 경우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의 조지 보틱 위원장 직무대행은 회계 감사인을 “투자자를 지키는 감시자”로 표현하며 “재무제표 감사는 자본시장과 경제 나아가 국가의 건전성을 떠받치는 핵심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마크 코지엘 회장도 공인회계사 자격의 상징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그 세 글자를 얻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며 “그 가치를 쉽게 내려놓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