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임계점을 넘어서며 삼성전자가 메모리 업황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매출은 과거 슈퍼사이클의 고점을 가볍게 갈아치웠으며, 영업이익 측면에서도 아마존, 메타 등 글로벌 거대 기술기업(빅테크)들을 앞지르는 기염을 토했다. 구글의 새로운 알고리즘 등장으로 제기됐던 ‘메모리 고점론’은 오히려 수요층을 넓히는 기폭제가 되어 반도체 부족 현상을 2027년 이후까지 연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고 지난 11일(현지시각) Wccftech가 전했다.
삼성이 이끄는 ‘메모리 골드러시’… 빅테크 실적 압도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삼성전자가 2026년 1분기 메모리 분야에서만 504억 달러(약 74조86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세계 1위를 수성했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D램(DRAM)에서 370억 달러(약 54조9600억 원), 낸드(NAND)에서 134억 달러(약 19조9000억 원)를 벌어들였다. 이는 메모리 호황기였던 2018년 3분기 매출(189억 달러, 약 28조 원) 대비 167% 급증한 수치다.
주목할 점은 수익성이다. 삼성전자 D램 사업부의 영업이익 규모는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TSMC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거물들을 앞질렀다. AI 연산을 위한 필수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저전력 D램(LPDDR) 수요가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 사이에서 폭증한 결과다.
‘터보퀀트’ 공포는 오해… “수요 절벽 아닌 시장 확대 신호”
최근 구글이 발표한 메모리 압축 알고리즘 ‘터보퀀트(TurboQuant)’는 시장에 잠시 찬물을 끼얹었다. 메모리 사용 효율을 극대화해 수요를 줄일 것이라는 공포에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 등 주요 공급사 주가가 요동쳤으나, 업계 전문가들은 이를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로 풀이한다.
한인수 KAIST 교수는 최근 간담회에서 “효율 개선이 AI 도입 비용을 낮춰 더 많은 기업이 AI 모델을 채택하게 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메모리 시장에 긍정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마이클 델 델(Dell) CEO 역시 가속기당 메모리 용량이 2022년 80GB에서 2028년 2TB로 늘어나고, 전체 수요는 약 625배 증가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5년 장기계약 체결 가속… 2027년까지 ‘쇼티지’ 이어진다
공급 부족이 상시화되자 구글, 아마존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삼성전자와 최대 5년 기간의 장기공급계약(LTA)을 맺기 시작했다. 이는 과거 단기 계약 위주였던 메모리 시장의 관행을 깨는 변화로, 공급사 입장에서는 미래 수요 가시성을 확보하는 강력한 추진력이 된다.
현재 삼성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베라 루빈’과 AMD의 ‘인스틴트 MI355X’에 탑재될 HBM3E 및 HBM4 공급을 서두르고 있다. 신규 생산 라인 증설에도 불구하고 실제 가동까지의 시차로 인해, 메모리 부족 현상은 오는 2027년 하반기 이후까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2027년까지 이어질 ‘메모리 초호황’,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
삼성전자가 쏘아 올린 기록적인 실적은 단순한 일회성 행운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생명력을 가늠할 세 가지 핵심 지표에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가장 먼저 살펴야 할 점은 차세대 메모리인 HBM4의 양산 속도와 수율이다. 엔비디아와 AMD가 내놓을 차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의 성능은 전적으로 메모리 대역폭에 의존한다. 기술적 난도가 급증한 HBM4 시장에서 누가 먼저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느냐가 향후 2~3년의 시장 점유율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둘째로 글로벌 빅테크의 설비투자(CAPEX) 추이다. 아마존과 메타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은 현재 천문학적인 자금을 데이터센터 구축에 쏟아붓고 있다. 구글 ‘터보퀀트’ 같은 효율화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이들의 투자 규모가 꺾이지 않는다면 메모리 수요는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마지막으로 장기공급계약(LTA)의 비중이다. 과거 메모리는 시황에 따라 가격이 널뛰는 소모품 취급을 받았으나, 최근에는 5년 단위의 장기계약이 늘고 있다. 이는 메모리가 산업의 ‘생존 자산’으로 격상되었음을 의미하며, 기업의 실적 변동성을 낮춰 주가 안정성을 확보하는 강력한 토대가 된다.
이제 시장 참여자들은 기술 혁신이 수요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시장을 창출하며 2027년 이후까지 호황을 견인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