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교 도서관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 구호가 명문 대학의 상징적인 공간을 장식한 이 이미지는 미국 고등 교육 시스템에 드리운 심각한 그림자를 시사한다.
영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2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의 대학 재편 계획이 고등 교육, 혁신, 경제 성장, 심지어 미국의 국가 정체성에까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단순히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우려를 더한다.
“경제 혁명,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언은 혁명가의 선언을 연상시킨다. 이코노미스트는 “어떤 혁명가든 알다시피, 낡은 질서를 쓸어버리기 위해서는 수입 관세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문화 통제권을 쥔 기관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엘리트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대한 통제권 확보가 MAGA 진영의 핵심 목표라고 지적했다.
◇ 공화당의 대학 압박, 연방 정부 개입 수위 높이나
지난 10년간 명문 대학들은 과거 누렸던 초당적 지지를 잃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상황이 부분적으로 그들 자신의 잘못”이라고 분석했다. 억압에 대한 맹목적인 집단 사고에 굴복하고, 학생들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안전을 명목으로 연사 초청을 거부하는 행태가 지지율 하락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의 교육 성취도에 따른 양극화 심화 또한 대학의 입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2024년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총 득표수에서는 패했지만, 대학원 학위 소지자들에게는 20%포인트 차이로 압승했다. 이러한 정치적 환경 변화는 학계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공화당은 이러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들은 오랫동안 대학들이 좌파 편향적이며 미국적 가치를 경시하고, 과도한 학비로 학생들을 착취한다고 비판해 왔다. 2022년 여론 조사 결과, 공화당 지지자의 58%가 고등 교육이 국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는 14%에 불과했다. 이러한 분노는 실제 정책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플로리다주의 론 드산티스 주지사는 “공립 대학들을 ‘좌파적 각성’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며 대학 이사회를 자신의 측근으로 채우고, 인종 및 성별 관련 특정 관점 지지를 금지했으며, 교수진 종신 재직권 폐지를 위협하기도 했다.
이제 이러한 움직임은 연방 차원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에 재선된 후 “우리 대학과 학교에서 좌파 광신자들을 몰아내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또한 대학 기부금에 세금을 부과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대학에 대한 연방 연구 자금 지원을 삭감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이미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 분야, 교육 과정, 학생 선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연방 정부의 통제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졸업생 취업률 공개를 의무화하여 연방 정부가 대학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 학계 및 경제계, 우려의 목소리 높여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시도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위험하다”고 지적하며, “무엇보다 학문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은 정부 간섭 없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실험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는 공간이어야 하지만, 연방 정부가 연구 주제나 교육 과정을 지시하기 시작하면 혁신과 지적 진보가 억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학의 자율성 훼손 또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대학은 정부의 정치적 변동에 휘둘리지 않고 고유의 사명과 가치에 따라 운영되어야 하지만, 연방 정부의 개입 증가는 관료주의와 정치적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 대학은 오랫동안 혁신과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다. 새로운 기술 개발, 숙련된 인력 양성, 기업가 정신 고취 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코노미스트는 “연방 정부가 대학의 능력을 약화시키면 미국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사회의 본질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학은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 배우고 토론하는 장이다. 연방 정부가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려 한다면, 대학은 비판적 사고와 지적 다양성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상실할 수 있다.
물론 대학에 대한 비판이 부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학비 상승, 접근성 문제, 편향성 논란 등 대학들은 끊임없이 정당한 질문에 직면해 왔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문제 해결책이 연방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아니라, 대학 내부의 개혁과 투명성 강화에 있다”고 강조한다.
MAGA의 대학 재편 계획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할지는 모르지만, 이는 “위험하고 역효과를 낳을 수 있는 계획”이다. 미국의 고등 교육 시스템을 약화시키고, 혁신을 저해하며,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미국 사회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계획이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했다.